한 대학원생이 국내 정기간행물을 대거 활용해 논문을 썼더니 지도교수가 “이게 논문이야, 신문 쪼가리지!”라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영어를 비롯한 선진국의 언어로 쓰인 고급 문헌을 참고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강준만의 새 책 《한국인 코드》에는 권위있는(?) 참고 문헌의 각주가 매우 적습니다. 대신 ‘신문 쪼가리’를 대폭 인용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민족성, 국민성’을 연구하는 데에 권위있는 서양 문헌의 각주가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제 목 : 한국인 코드
지은이 : 강준만
펴낸곳 : 인물과 사상사(초판 출간일 2006.2.27) / 초판 1쇄를 읽음/ 값 10,000원
국내 연구자들의 책과 신문, 잡지를 주로 인용하여, 이미 갖고 있으나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의 – 그러니까 한국인의 – 습성을 들추어내어 꼬집고 있습니다. 그 습성을 10개의 코드로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집단의 동일성을 형성하는 사고 패턴, 정치적 입장 등을 어찌 10개의 코드로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이 책을 《한국인 코드》 연작 시리즈의 시발(始發)로 삼고 있습니다.
10개의 코드는 모두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한 면만 치우쳐 해석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그 코드는 부정적으로 작동하기도 하고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빨리빨리’도, 언뜻 ‘조급성’이라는 부정적 면만 보이지만, 열정과 역동성이라는 개념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사장 이기태는 2005년 5월 24일 숙명여대 특강에서 “글로벌 시대의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라며, 삼성 휴대폰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어떤 경우에는 100점짜리로 완벽하게 일을 하는 것보다는 80점 수준에서 빨리 끝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빨리빨리’를 매우 긍정적으로 읽을 수 있는 예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우리의 ‘빨리빨리’ 습성은, 정작 ‘문제해결’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지적을 합니다. 사적 영역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다가, 사회적 문제 해결은 ‘곪아 터질 때까지 기다리기”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립학교법 파동과 농민 시위를 들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한국인 코드 10입니다. 제목과 부제를 옮깁니다. 감(感)이 오는 것도 있고, 제목만으로는 아리송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일독을 권하는 의미에서 더 이상의 요약은 하지 않겠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 가십거리로 비칠 수도 있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의 ‘편견’ 또는 ‘지적 쏠림’으로부터 벗어나 균형 감각을 얻는 데 매우 의미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 너나 잘하세요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2. 빨리빨리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
3. 배 아픈 건 못참는다 한국형 평등주의의 괴력
4. 최고·최대·최초 자존감을 위한 투쟁
5. 정(情) 가족주의·정실주의·부정부패
6.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7. 소용돌이 쏠림의 축복과 저주
8. 서열 관존민비·출세주의·입장주의
9. 아버지 생존을 위한 지도자 추종주의
10. 목숨 걸고 단기적 극단, 장기적 중용
강준만 교수의 책은, 읽는 이에 따라서 그의 지나칠 정도의 정치적 견해 표출이 귀에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그 견해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물론하고, 그의 ‘지적 성실성’에 먼저 감탄하게 만듭니다. 그는 이 책 머리말을 “… 좀더 유익한 책을 내놓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노동에 매진할 걸 약속드린다.”고 끝맺고 있습니다.
‘노동에 매진’한다는 말이 눈에 박힙니다. 집요한 해결보다는 ‘빨리빨리’ 건너뛰기에 바빴던 저의 지적 불성실함을 반성합니다.
■ 밑줄 긋기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어두었던 부분 중에서)
- 물고기는 물을 모른다. 그물이나 낚시에 걸려 물 밖으로 나오게 될 때 비로소 물을 알게 된다.
- “너나 잘하세요”는 자기성찰 없는 비판 문화가 드센 한국 사회를 향한 일침니다.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다.(…) 대중이 의존하는 최대의 심리적 방어 기제가 바로 냉소주의다.
- 힘을 가진 자들은 냉소적이지 않다. 자신들의 사상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압제의 희생자들도 냉소적이지 않다. 그들은 증오로 가득 차 있으며 증오란 것은 다른 강한 열정들과 마찬가지로 부수적인 일련의 믿음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버트란트 러셀)
- 나는 잘하는데 남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의 탓”이라는 심리와 통한다. 이 버릇을 사회심리학에서 ‘자기본위적 편향’이라고 하며, 이게 집단에서 나타날 때 ‘집단본위적 편향’ 또는 ‘내집단중심주의(ethnocentrism)’라고 부른다.
- 이제 더 이상 배고픈 게 아니라 누릴 것 다 누리고 큰소리치먼서 여전히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하고 과시하면서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헤대는 사람들에 대한 냉소이다.
- 한국인의 평등주의는 철저하게 개인,가족 차원에서만 작동하며, 그 주요 수단이 ‘자녀 교육’이다. 그래서 ‘자녀 교육’은 전쟁이 된다. 한국인은 나와 내 가족의 문제를 사회와 제도가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경험적 확신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공적 불신 사적 신뢰’라는 대원칙을 준수하면서 자녀 교육과 더불어 자신의 연고 챙기기에 급급한 삶을 살고 있다.
- 메가 처치(mega church)의 원조는 한국이다. 단일교회 신도 수 세계1위 교회는 한국에 있으며, 세계 10대 교회 중 4개, 세계50대 교회 중 23개가 한국에 있다.
- 4반세기라는 말은 억지다. 1세기라는 장장 1백 년 중 아직 75년이나 남겨둔 채 겨우 2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4반세기 운운하며 ‘세기’를 들먹이는 것은 억지며 과장이다. 25세 청년을 ‘4반백세 청년’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맥시멀리즘의 좌우명은 “큰 것은 아름답다”인데, 이게 천박하게 나타나는 유형이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 크기로 인격을 재거나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다.
- 6.25는 시민 사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절대적 우위 문화, 달리 말해, ‘국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국민’을 만들어 냈다. 이는 ‘공적 소극성, 사적 적극성’ 현상으로 나타났으며, 사적 적극성은 중앙과 정상을 향해 맹렬한 돌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6.25 이외에도 한 세대 이상 지속된 식민 통치와 강압적 권위주의 통치는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는 세월의 연속이었다.
삶은 집단주의적으로 살면서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개인주의적으로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6.25 멘탈리티’이며, 한국인의 치열한 생존경쟁의 이면에는 이런 ‘전시체제 체질’이 작동하고 있다. - 입장에 따라 생각과 이념마저 달라지는 게 입장주의다.
- 한국의 극심한 분열주의는 ‘승자 독식주의’에서 비롯된다.
- 개혁의 타락은 보수의 타락보다 무섭다. 무슨 ‘개혁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처럼 굴면 안 된다. 전부는 아닐망정 대부분은 ‘입장’에 따른 것이지 출세시켜주는데 개혁 완장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사는 들쥐의 일종인 레밍(lemmings)은 종족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 떼 지어 바닷가 절벽으로 밀려가 뛰어내린 뒤 죽을 때까지 헤엄친다고 한다. 디지털 레밍스라는 말도 있다. 레밍처럼 사이버상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집단행동을 하는 이용자를 가리킨다.
- ‘민중 예찬’은 일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수신문의 지면에서 더 자주 나타나고 있따. 이른바 ‘민중 상업화’다. 우파가 주로 돈벌이 용도로 ‘민중 상업화’를 써먹는다면, 좌파는 주로 헤게모니 투쟁의 용도로 ‘민중 상업화’를 동원한다.
- 원론과 상식은 반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승리한다. 그러나 그건 실속 없는 승리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원론과 상식만으로 대처하기엔 너무도 복잡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