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수, 3
양의|兩儀|가 사상|四象|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한의학에서 ‘사상체질’이라고 할 때의 그 ‘사상’인데, 사상은 조금 후에 다루기로 하죠. 편의상 4보다 빠른 3의 수를 가진 삼재|三才|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재는 천|天|, 지|地|, 인|人|을 말합니다. 팔괘는 세 개의 효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위가 하늘이요, 중간이 사람이고, 아래가 땅이라고 했습니다. 6효로 이루어진 대성괘에서는 위로부터 각각 2개씩 묶어 하늘, 사람, 땅으로 구분합니다. 괘를 삼재로써 풀이하는데, 괘가 처음에 만들어질 때 이런 뜻을 담고 있었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대에 3이라는 숫자를 발견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원시인들은 아주 추상적 개념인 수|數|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 해와 달, 남자와 여자 등 그들이 보고 느끼는 것들이 거의 이원적인 요소로 되어 있으므로 하나와 둘은 쉽게 이해를 했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물체에서 나아가 선과 악이라는 이원적인 개념까지도 감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어 3이 된다는 것은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3이라는 숫자는 자기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나’라는 인간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3의 개념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은 가장 대표적인 자연물인 하늘과 땅에 인간을 참여시킨 개념입니다.
고대의 문헌을 보면 3이라는 수는 다수의 뜻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사람이 셋 이상 있으면 중|衆|이라 했고 짐승 세 마리 이상을 군|群|이라 했습니다. 또한 3은 끝이라는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끝이라는 것은 곧 완전한 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단군신화에 보면, 환웅이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 올 때 몇 사람을 데리고 왔나요? 바로 바람, 구름, 비의 삼신을 참모로 삼고, 3천의 부하를 거느리고 내려왔습니다. 환웅이 하늘의 아들이라는 징표로 가져왔다는 천부인|天符印|도 세 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부여 금와왕의 큰아들 대소를 포함해 일곱 왕자와 신하들의 시기를 받던 주몽이 화를 피해 남쪽 졸본부여 땅으로 내려와 그곳 왕의 딸이었던 소서노와 결혼하여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이때 그를 따라와 건국을 도운 사람은 오리, 마리, 협부 등 세 사람이었습니다.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도 천지인 자판을 이용해서 보냅니다. 한글은 발음기관과 천지인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천지인을 뜻하는 삼재는 그 뜻을 더욱 확대하여 상․중․하를 나타내기도 하고, 처음-중간-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흔히 나이가 들면 하초|下焦|가 부실해진다고 하는데, 이때 하초는 삼초|三焦| 중의 하나로 비뇨 생식 기능과 배설 기능을 말합니다.
이 외에도 신화, 전설, 민담은 ‘3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 사람 또는 세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3은 신성한 수이며 완전한 수라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서양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삼신일체니 삼위일체니 하는 생각은 여러 민족의 공통된 사고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삼신 개념이 있습니다. 아기를 점지하고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세 명의 신을 말합니다. 그 모습이 할머니 같다고 하여 삼신할머니로 불립니다.
이처럼 3은 다수, 완전한 수, 신성한 수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생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음양(2)의 조화로 새로운 결과물(1)이 생기면 그것이 바로 3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즉 자연에서 사람이 나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 자식을 낳는 등 3은 음양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꼴값하려면 넷은 있어야
사상|四象|은 ‘넉 사’에 ‘모양 상’, 즉 네 가지 모양을 말합니다. 익히 들어온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 태음인이라고 할 때의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을 사상이라 말합니다.
상|象|은 모양입니다. 태극은 태초의 아무 것도 나뉘어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고, 음양은 대대|待對| 관계를 말합니다. 자연 속에 사람에 대한 인식, 즉 자기에 대한 인식을 삼재|三才|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직 형상이 없습니다. 모양이 없습니다. 추상적인 개념 수준입니다. 사상|四象|으로 분화하여야 드디어 모양을 드러냅니다.
드러난 모양을 보고 사람들은 그 속에 담긴 이치를 깨닫습니다. 드러난 모양이 ‘꼴’입니다. 그 모양에 담긴 이치에 맞게 사는 것이 ‘꼴값’하는 것입니다. 꼴값을 보고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것이 이제마의 사상의학입니다.

태양|太陽|은 양이 더욱 커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위로 모두 양인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태음|太陰|은 음이 음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소음|少陰|은 양이 음으로 분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에 양(−)이 있고 위에 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음에서 양으로 분화한 것이 소양|少陽|입니다.
양의|兩儀|, 즉 음양은 하나의 효로 표현합니다. 사상은 두 개의 효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세 개의 효를 겹치면 팔괘가 됩니다. 꼴값은 사상에 드러나 있고, 이를 확대한 팔괘에 세상 모든 이치가 걸려 있다고 하여 ‘걸 괘|卦|’자를 써서 팔괘라고 합니다. 팔괘는 앞서 많이 말씀드렸으니 따로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종합하자면,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습니다. 이를 <계사전>에서 역유태극, 시생양의, 양의생사상, 사상생팔괘|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