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13] 달도 차면 기운다 – 태극에서 음양까지

김치와 주역

지금까지 <주역>에 대해 난삽하게 썼습니다. 너무나도 어렵다고들 하니 시작할 때 흥미라도 끌기 위해 혈액형을 들먹이고 동전으로 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역>을 본격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이 있으니, 바로 필수 단어집을 외는 일입니다. <주역>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단어로는, 태극, 음양, 삼재, 사상, 오행, 팔괘, 육십사괘, 괘사, 효사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역>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주역>이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씌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오행사상은 초기 <주역>의 해석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던 개념이었습니다. <주역>을 해설한 십익 어디에도 오행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음양이 오행을 낳는 것으로 이론화된 것은 주자|周子|의 공이 컸습니다. 주자는 11세기 송대의 사람입니다.

괘는 문자가 있기 전에 만들어진 기호입니다. 양과 음을 나타내는 기호를 겹쳐 괘를 만들었습니다. 전설의 인물인 복희씨|伏羲氏|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문자가 생긴 이후에 그 괘를 문자로 설명한 것이 괘사입니다. 나중에 그 괘를 뜯어서 육효 하나하나를 설명한 것이 효사입니다. 여기에 철학적 성격이 농후한 십익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이를 해석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왕필, 정이천, 주자 같은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역>은 발전되고 또는 덧칠되었습니다.

따라서 유의하셔야 할 것은, 지금부터 설명 드리는 개념이 먼저 있고 난 후에 <주역>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역>이 먼저 있고 난 다음에,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런 개념들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마치 <주역>이 시|詩|라면 이러한 개념들은 시를 설명하기 위한 시 이론 용어들과도 같습니다. 시를 설명하려면 운율과 심상, 감정과 생각을 찾아내고, 이를 위해 시어와 행, 연, 운율을 분석합니다. 운율에는 내재율과 외형률이 있고, 심상에는 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 공감각적 심상 등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시를 이론적으로 갈기갈기 찢어 분석하고 나면, 정작 시는 사라지고 이론만 남습니다. <주역>을 지나치게 이론적 틀에 맞춰 분석해도 마찬가지 결과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후대에 덧칠된 이론을 걷어내고 태초의 <주역>만 쏙 빼내어 읽을 까닭은 없습니다. 태초의 김치에는 고춧가루가 없었다고 해서 희멀건 김치만 먹을 이유가 없듯이 말입니다. 신라시대 때부터 김치가 있었으나 고추는 18세기에 와서야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고춧가루 없는 김치를 상상하기 힘들 듯, 선후관계가 어찌됐든 이제 음양오행 이론을 떠난 <주역> 해석은 상상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김치와 <주역>의 근원을 따져 태초의 모습을 밝히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고전을 읽는 목적이 삶의 지혜를 얻고 사유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것이라면 굳이 애써 그 근원부터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고춧가루가 듬뿍 뿌려진 18세기 이후의 김치 맛을 음미하듯, 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체계화된 눈으로 <주역>을 읽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달도 차면 기운다 – 태극에서 음양까지

<주역> <계사전>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역유태극, 시생양의, 양의생사상, 사상생팔괘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그대로 풀어 쓰면, 역에는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았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씌어있기는 한데 태극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을 <주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만 태극을 1이라고 한다면, 1에서 2가 생기고, 2에서 4가 생겼으며, 4에서 8이 생겼다는 수 개념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고대의 문헌에서 태극이라는 단어는 <장자>와 <주역>만 있습니다. <주역> <계사전>은 공자가 썼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후대 진, 한의 유학자들이 도가와 음양가의 사상을 수용하여 지은 것이라 추측됩니다. 따라서 <장자>에 나오는 태극 개념이 먼저인데, 여기서 태극은 ‘지극히 높은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도|道|를 설명하기 위한 수식어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태극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은 송대에 이르러서야 체계화됩니다. 송대의 유학자 주렴계(1,017~1,013)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무극이 곧 태극|無極而太極|’이라고 말했습니다. 무극과 태극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무극이 곧 태극이라는 뜻입니다. 무극은 끝도 없고 중심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둥근 원 그 자체입니다. 숫자로 표현하자면 0에 해당됩니다. 이에 반해 태극은 둥근 원에 처음과 끝을 나타내는 선이 하나 그어져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선을 좌우로 해서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이 생기는데, 이는 곧 태극에서 음양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태극을 숫자로 나타내면 2가 만들어지기 전의 1의 상태입니다.

태극에서 양의|兩儀|가 생겼습니다. 양의는 ‘둘 양|兩|’, ‘거동 의|儀|’, 즉 두 개의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다름 아닌 음|陰|과 양|陽|을 말합니다. 음과 양은 대대|待對|의 개념입니다. 대립|對立|이라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대립|對立|은 마주 서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격투기를 하기 전에 마주 서있는 긴장 상태와 같습니다. 따라서 대립은 의견이나 처지가 서로 반대되어 부딪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 중 하나가 싸워 이겨야 해결이 될 것 같은 뉘앙스입니다. 반면 대대|待對|는 기다리면서 마주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대의 개념입니다만 싸워 이겨야 결판이 난다는 뉘앙스는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오길 간절히 기다린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양이 바로 그러합니다. 음양|陰陽|이라는 글자를 자세히 보면, 두 글 자 모두 좌측에 언덕 부가 있습니다. 언덕을 기준으로 햇빛이 비치는 곳이 양이고 그렇지 않은 곳이 음입니다. 햇빛이 비치는 곳이 있으니 비치지 않는 곳이 있는 법입니다. 남녀, 상하, 일월, 천지, 좌우 등의 개념도 대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반대 개념들 뿐만 아니라 대대|待對|의 관계에 있는 모든 것을 일컬어 음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을 <주역>에서는 음효(- -)와 양효(一)의 기호로 표시한 것입니다.

<주역>에서 대대의 논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대대는 곧 ‘관계’를 나타냅니다. 서로 대립하여 눈도 마주치기 싫은 상태가 아니라, 상대방이 있어야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나와 남은 서로 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방은 내가 있기 위한 전제가 됩니다. 상호의존적인 관계, 이것이 바로 음양으로 표현되는 대대의 관계입니다.

<주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대의 관계를 말합니다. 게다가 <주역>에서 영원한 양도, 영원한 음도 없습니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으로 변하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됩니다. 따라서 극에 달한 양은 음과 마찬가지이고, 극에 달한 음은 양과 마찬가지입니다.

건괘의 제6효는 항룡유회|亢龍有悔|입니다. ‘지나친 용이니 후회가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1효에서 5효까지는 물속에 잠긴 용이 땅으로 오르고 다시 하늘까지 오르는 성장 발전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6효, 즉 마지막에 이르러, 지나치게 되면 후회가 있으리라고 주의를 줍니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으로 변한다는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주역>에서 절대적으로 좋은 괘도, 절대적으로 나쁜 괘도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달도 차면 기울고,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 <주역>은 겸손과 절제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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