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10] 확률 99.9% 주역 점

사람들은 매우 구체적인 현실 문제로 점을 칩니다. 옛날에 점을 칠 때, 지금 이웃 나라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에 대해 점을 쳤습니다. 그러나 점을 쳐서 ‘전쟁을 일으키라’는 직접적인 점괘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현실 모두에 대응되는 점괘를 만들려면 수천 수백 가지로도 어림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점괘는 여러 사태에 두루 통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해야 합니다. 따라서 매우 추상적입니다. <주역>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유일하고 절대적인 해석이 없었습니다. <주역>을 통해 만 사람이 만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글도 그 중의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비단 <주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개의 점술서는 이와 비슷한 이치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두루뭉술함, 이것이 바로 모든 점술서의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점괘를 신봉하며, 마치 그 점괘가 자신을 위한 점괘인 것처럼 여기고 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점과 상, 명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점은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필요한 것입니다. 무언가를 선택해야하는 고비에서 점을 칩니다. 이런 면에서 점은 상|相|이나 명|命|과는 다릅니다. 관상, 수상 등의 상|相|은 신체에 드러난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알아냅니다. 사람의 모습 속에 그 사람의 미래가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명|命|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주명리학이 바로 명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난 시간에 의해 그 미래가 결정된다는 생각입니다. 상과 명, 둘 다 ‘운명’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점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사주는 타고난 운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의 갈림길에서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청년기에 고생하다가 중년에 운이 트일 것이다’라는 답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중년에 운이 트인다고 했는데, 계속 실패한다면? 아마 그 사주를 본 사람은 ‘아직 중년이 끝나지 않았으니 더 기다려보라’는 말만 할 것입니다. 20년간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업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새 사업을 시도할까 말까를 선택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점입니다.

<좌전>에 이르기를, “점으로써 의심을 내려고 한다. 의심하지 않을 바엔 무엇 때문에 점을 치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즉 무언가 결정적으로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 점을 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점은 기본적으로 동전 던지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확률로 따지자면 늘 50%입니다. 잘될 확률도 50이요 안될 확률도 50입니다. 사실 엄청난 확률입니다.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기 위해 침 튀기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왼손바닥에 침을 뱉고 오른손 손가락 두개를 모아 탁 칩니다. 침이 튀기는 쪽으로 갑니다. 이것이 바로 점의 원초적이자 근본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동전을 던지든 침을 튀기든, 문제는 할 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역>을 이용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댓가지를 뽑을 때마다 점괘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역>은 이를 예방할 장치를 만들어두고 있습니다.

<좌전>에 이르기를, “처음 점을 치면 알려준다. 다시 하면 그것은 모독하는 것이다. 모독하면 알려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즉 어떤 선택의 순간에 점은 딱 한 번만 치라는 것입니다. 만약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친다면 점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괘가 나온다고 다시 보려한다면 애초부터 점을 치지 말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점은 스스로 도저히 결정하기 힘든 순간에 최후의 결단을 내리기 위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이 순간 점의 확률은 50%를 초과하게 됩니다. 즉 원래의 확률 50%에다, 점괘를 믿고 그대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더해져 50% 이상의 성공률을 확보한 것입니다. 머릿속에 이미 선택에 대한 확신과 성공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 성공하게 됩니다. 맥스웰 몰츠의 《사이코 사이버네틱스》에 ‘성공 메커니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래의 일을 두고 머릿속에서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상상하기만 해도 실제 그렇게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주역> 점은 선택에 대한 확신을 주는 장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사로이 보자면 한 개인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 확신을 주어 그 선택을 따랐을 때의 일의 성사 확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 맘에 두고 있던 여인네가 이쁘기도 하거니와 혼인하면 길하다는 점괘를 얻었다면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반드시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이라면 더욱 큰 역할을 합니다. <서경>의 홍범구주를 보면, 나라에 의난|疑難|이 있을 때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에는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 다음은 백성들에게 묻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다면, 그제서야 복서|卜筮|에 묻는다고 씌어 있습니다. 복|卜|은 짐승 뼈나 거북 등가죽을 태워 얻은 점을 말하고, 서|筮|는 산가지를 뽑아 길흉을 점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주역> 점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점은 인간의 지혜를 모두 동원해도 풀리지 않을 때 최후에 기대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대의 점은 나라의 모든 의견을 한 곳으로 모으는 중대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점괘가 조정 대신과 백성의 의견과 일치하면 이것을 대동|大同|이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이 번영하여 화평하게 되는 것을 대동 세상이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잔치라는 뜻을 가진 대학교의 대동제|大同祭|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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