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09] 점술서 , 분서갱유에서 살아남다

이 글은 [주역07] 주나라 점괘 데이터베이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런데 가끔 <주역>을 해설한 책을 보면, <주역>은 보편타당한 원리를 담은 철학서이지 점술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송나라 때 정이천이라는 학자는 <주역>에서 철저하게 점술적인 요소를 빼고 의리|義理|의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역>이 점술서였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것은 진나라였습니다. 통일 후 34년, 진시황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일부에서는 여전히 비판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그 선봉에 유가가 있었습니다. 유생들은 진제국의 철저한 군현제 강행을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황제는 일단 그 의견을 조정의 공론에 붙였습니다.

철저한 법가 원칙으로 일관한 승상 이사|李斯|는 이에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중에라도 사적인 학문으로 정치를 비판하는 일이 없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웁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진나라 역사서 이외의 사서는 모두 불태우고, 《시경》 《서경》을 포함한 다른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30일 이내에 모두 관에 신고하여 불태우도록 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노비로 삼았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차린 채 옛것을 들먹이며 현실 정치를 비방한 자는 다리를 잘라버렸습니다. 단 의약·점복·농업 등 실용 서적은 제외했습니다. 이런 초강경 종합 대책을 시황제의 승인 하에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것이 분서|焚書|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불로장생약을 찾으러 갔던 방사|方士|들이 도망을 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시황제는 이들을 잡는다는 핑계로 유생 460여명을 체포해 그대로 구덩이에 묻어버렸습니다. 산 채로 말입니다. 이것이 갱유|坑儒| 사건입니다. 분서 사건과 함께 일러 분서갱유|焚書坑儒|라 합니다.

이런 사상 초유의 사건을 겪으면서 웬만한 책은 모두 불살라졌습니다. 그런데 <주역>만큼은 살아남았습니다. 의약·점복·농업 등 실용 서적은 남겨두었다고 했는데, <주역>은 점복서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치는 책을 실용서라 표현하니까 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대개 우리는 ‘점 = 미신’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수천 년 전에 씌어진 <주역>을 읽고 있습니다. 고전 독법의 첫 번째 원칙,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하지 말자, 잊지 않으셨겠죠?

고대의 점의 의미는 지금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그리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세상 변화가 모두 신기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기후가 바뀌고, 천둥과 지진,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황하가 범람하여 홍수가 일어나고, 툭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현상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까닭을 제대로 안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일을 할 때는 꼭 하늘에 그 뜻을 물었습니다. 지금 전쟁을 하는 게 좋을지 그렇지 않은지, 심지어 사냥을 하러 갈 때조차도 사냥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물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묻는 방법이 바로 점|占|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인간의 지혜도 발달하면서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반복되는 자연의 변화에서 질서를 발견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계절의 변화도 당시로서는 매우 큰 발견이었을 것입니다. 계절에 따른 기후의 변화를 알아냈다는 것은 농경사회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상나라 때는 달력을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로부터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씨를 뿌려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신에게 묻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파악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졌습니다. <주역>은 이 시기에 즈음하여 다듬어졌을 것입니다. <주역>의 팔괘가 하늘, 땅, 비, 바람, 우레와 같이 자연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당시 <주역>은 혹세무민의 미신서가 아니라 대단히 실용적인 서적일 수 있었습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