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비트 점술서에서 철학서로
앞에서 괘, 효, 괘사, 효사, 십익 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지금 전해지는 <주역>은 이 모든 것이 통합된 것인데, 처음부터 이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인 효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효를 몇 개 붙여 괘를 만들고, 여기에 설명을 붙인 괘사와 효사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주역>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효입니다. 이어진 선(一)과 끊어진 선(- -), 딱 두 종류입니다. 아마 인간이 혼동 상태에서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면서 낮과 밤, 남자와 여자처럼 이원적인 형태의 분별이 생겼을 것입니다. 비록 아주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인식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마치 컴퓨터가 정보를 표현하고 처리하는 최소 단위가 0, 1로 이루어진 ‘비트’인 것처럼 말입니다.
컴퓨터는 0과 1이라는 단 두 개의 수만으로도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8비트를 1바이트라고 합니다. 0,1,1,0,1,1,0,1 과 같이 8개의 이진수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8비트로 표현할 수 있는 정보는 28이므로 256가지입니다.
반면 <주역>의 괘는 6개의 효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26인 64가지만 표현할 수 있습니다. 6비트 컴퓨터라 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8비트 컴퓨터보다 못한 셈이죠. 그러나 인간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이 있습니다. 64개의 대표 코드(=괘)에 대표적 특징(=괘사)을 부여하고, 코드를 이루고 있는 여섯 개의 비트(=효)마다 자세한 설명(=효사)을 달아 놓았습니다.
가끔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효를 6개 쌓아 하나의 괘를 이루어 64가지 괘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을 다시 두 번 쌓으면 4,096가지의 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점의 정확도가 매우 높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마 과거에 분명 이런 시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64가지를 넘어선 괘의 구성은 오히려 인간에게 더 혼란을 줬을 것입니다. 너무 복잡해서 익히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4,096가지에 여섯 개의 효를 또 각각 설명하면 자그마치 24,576가지의 효가 생깁니다. 익혀서 활용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숫자입니다. 또한 가짓수가 많을수록 점을 맞힐 확률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가급적 모호한 말로써 여러 상황에 두루 통할 수 있는 점괘가 나와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넘 효과’는 그 설명이 모호할수록 더욱 효과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8괘는 복희씨가 만들고, 괘사와 효사는 주나라 문왕과 주공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공자가 십익을 추가하여 현재의 <주역>이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십익을 모두 공자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공자의 제자들, 즉 유가에서 많은 작업을 했을 거라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십익이 있기 전까지 <주역>은 순전히 점복서의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철학적인 성격이 농후한 십익이 추가되면서 점점 점복서에서 철학서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주역>이 철학서로 변모하는 과정 중에서 특히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합니다. 전국시대 수많은 학파가 있었는데, 그 중 음양가와 도가학파의 영향을 받아 <주역>을 음양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가는 이를 더욱 확장하여 인간의 당위 규범까지 규정하게 됩니다.
하늘, 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 등 <주역>의 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자연철학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면서 지나친 관념을 덧칠한 감이 없지 않으나 <주역>이 철학서로 발돋움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주역>은 더 이상 점을 치고 해석하는 도구가 아닌, 세상을 해석하는 64개의 코드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표현하자면 판단을 위한 64개의 ‘범주’가 생긴 것입니다.
세상을 읽는 64개의 범주
범주는 영어로 카테고리(category)라고 씁니다. 그리스어 ‘kategorein’ 유래했습니다. 원래는 법률 용어였습니다. 고소장 쓸 때 누가, 언제,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나눠 쓰듯이 사물을 분류해서 정리한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테고리를 번역한 단어인 범주|範疇|는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말에서 따왔습니다.
범주라는 말을 철학적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10개의 범주로 구분했습니다. 오로지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우시아’와 그로 인해 생기는 나머지 9개의 범주로 나누었습니다. 예를 들어, 손병목이라는 사람이 있어야 손병목의 얼굴 색깔이 있고 머리 모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철수와 영희가 연애를 한다면, 철수와 영희가 있어야 둘 사이의 연애라는 ‘관계’가 생기게 됩니다. 이때 손병목이나 철수, 영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우시아’이고 나머지는 이에 따라오는 범주들입니다.
‘관계’라는 말은 동양 세계에서는 매우 낯익은 개념입니다. 취업을 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상한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형과 동생이 한 명씩 있고…’와 같이 씁니다. 이것을 서양 사람들이 보면 매우 황당해할 것입니다. ‘자기 소개서’에 정작 ‘자기’ 이야기는 없고 온통 ‘관계’ 이야기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관계’를 중시하며 살았습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인 특징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샜습니다만 서양 철학사상 처음으로 ‘관계’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주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아리스토텔레스가 동양에 살았다면 주나라 문왕이나 주공, 공자와 같이 <주역>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열 개의 범주로 세상을 설명했다면, 스콜라 철학에서는 여섯 개의 범주로, 데카르트는 세 개의 범주로 나누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역>은 64괘로 세상 이치를 설명합니다. 괘는 <주역>에서 기본적인 범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이 규정한 범주와는 그 수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범주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혹시 주위에서 ‘단세포’라는 소리를 듣는 분이 계시다면 필히 <주역>을 공부해야 합니다. 단세포라는 말은 세상을 판단하는 범주가 겨우 하나밖에 없는 꽉막힌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혈액형별 성격 분류를 맹신하여 만나는 사람조차 혈액형에 따라 가리는 사람에게도 <주역>은 필요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람을 판단하는 네 개의 범주만 있을 뿐이니까요.
| 홍범구주|洪範九疇|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인데, 원래는 홍범입니다. 홍범은 세상의 큰 규범이라는 뜻이고, 그 내용의 핵심이 구주인데, 구주는 아홉 개의 조항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흔히 홍범구주라고 표현합니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에게 선정(善政)의 방법을 물었을 때 기자가 홍범구주로 교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원래 홍범구주는 전설 속의 삼황오제 중 하나인 중국 하(夏) 나라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로부터 받은 낙서(洛書)를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9개의 조항은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오복(五福)과 육극(六極)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경복궁의 강녕전의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정도전이 경복궁에 대하여 아뢰기를, “…강녕전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서경≫ 홍범구주의 오복 중에 셋째가 강녕입니다. 대체로 임금이 마음을 바루고 덕을 닦아서 황극을 세우게 되면, 능히 오복을 향유할 수 있으니, 강녕이란 것은 오복 중의 하나이며 그 중간을 들어서 그 남은 것을 다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