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충분한 돈과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지난 번 한국리더십센터의 <성공하는 리더들의 7가지 습관> 교육 때 교육참가자들 상호 대화 시간을 마련하고자 퍼실러테이터(교육진행자)가 질문했던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그 외 여러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각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적고 그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유럽이나 미국을 적었습니다. 저는 중국의 구이린(桂林)을 적었습니다. 빼어난 풍치가 감동적인 이곳은 예로부터 시인과 화가들의 글과 그림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桂林山水甲天下(계림의 산수는 천하 으뜸이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 풍광이 황홀합니다.

저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유럽이나 서구를 동경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점만 보더라도 전 아직 문화적으로 글로벌하지 못합니다. 서양의 역사, 흔히 세계사를 공부해도 여전히 낯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 흥미가 없었습니다. 제 DNA에는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유전적 동질감만이 발현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목 : 그랜드투어 – 세계명문가의 자녀교육여행
지은이 : 송동훈
펴낸곳 : 김영사 / 2007.9.11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3,000
그런데 이 철저한 믿음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름도 낯선 《그랜드 투어》라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에 조금 변화가 생겼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에 가보고 싶습니다. 그 거울의 방에 가서 부와 권력의 극치가 어떠한 것인지 느끼고 싶습니다. ‘태양왕’이라는 휘황찬란한 별칭이 상징하는 절대권력 루이 14세를 느끼고 싶습니다. 그 절대권력을 향한 3대에 걸친 험난한 역사의 흐름을 느끼고 싶습니다.
루이 14세의 할아버지 앙리 4세는 화해와 용서의 리더십으로 종교전쟁으로 갈라진 프랑스를 통일하고 번영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앙리 4세의 ‘피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파리에서만 3천 명 이상의 신교도가 살해되는 대학살이었습니다. 파리를 탈출해 망명해 있던 앙리 4세가 왕이 되었을 때, 그는 파리를 용서했습니다. 왕국 전체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파리와 파리 시민을 용서했습니다. 내란으로 지쳐있던 프랑스는 겨우 안정을 되찾습니다. 그러나 그는 광신도에게 결국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 뒤를 이은 루이 13세는 리슐리외라는 불세출의 재상의 도움을 받아 절대왕정의 기초를 닦습니다. 달타냥이 나오는 소설 《삼총사》에서 아주 못된 추기경으로 그려지는 사람이 바로 리슐리외입니다. 달타냥과 삼총사를 중심으로 하는 선(善)과 추기경을 중심으로 하는 악(惡)의 대립, 결국 승리를 쟁취하는 권선징악형 소설이 《삼총사》입니다. 달타냥을 비롯한 소설의 주인공들의 사사로운 결투는 소설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러나 리슐리외는 귀족간의 개인적인 결투를 금지해 법의 권위를 바로세웠습니다. 리슐리외는 임종 직전 “당신의 적을 용서하겠느냐?”는 사제의 물음에 “나는 국가의 적 외에 어떤 적도 가져본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루브루 박물관과 맞닿아 있는 팔레 루아얄에는 근대 프랑스와 유럽의 설계자 리슐리외의 자취가 묻어 있습니다.
루이 14세는 고작 다섯 살에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침실까지 난입한 파리의 시민들이 자신과 어머니를 협박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반란세력을 피해 한밤중에 파리에서 도망쳐야 했습니다. 왕은 이때 겪은 굴욕과 추위, 배고픔을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과 체력, 열정으로 정무를 처리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예산지출도 직접 서명을 하여 처리했습니다. 귀족 대신 부루주아지 출신의 중류층 인사를 중용하고, 절대왕정을 확립하기 위해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습니다. 20년에 걸쳐 지어진 베르사유로 궁을 옮기면서 루이 14세의 절대권력은 그 틀을 잡습니다. 모든 귀족에게 베르사유에 어울리는 화려한 생황방식을 강요함으로써, 귀족들로 하여금 재산을 탕진토록 하였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를 꺾고 전 유럽을 자신의 발 아래 무릎 꿇렸습니다.

루이 14세는 청나라의 강희제를 연상시킵니다. 열 살도 채 못되어 왕이 되었고, 장수하면서 60년 이상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권력을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죽는 그 순간까지 정무에 파묻혀 살았고, 절대로 신하에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루이 14세를 계승한 루이 15세와 16세는 조상들을 본받지 못했습니다.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게 만들었던 루이 14세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히려 귀족들과 어울려 궁중의 화려함과 쾌락을 즐기다 결국 후궁과 총신에게 권력이 넘어가고 왕에겐 껍데기만 남습니다.
베르사유에 가면 참 많은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랜드투어(grandtour)는 18~19세기 유럽 각국의 귀족사회에서 유행한 여행 체험학습을 뜻합니다. 자녀에게 가정교사와 함께 유럽 대륙 곳곳을 여행하며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게 한 체험학습입니다.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6~7년 동안 체험을 통해 역사와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소수의 특권이긴 하지만 배울 것이 많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어학연수’가 아니라 ‘문화유산답사’에 가깝습니다. 어학이라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역사와 지혜를 가르쳐주고자 했습니다.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 불멸의 역사가 기번, 시인 바이런도 그랜드투어를 다녀왔습니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가정교사 자격으로 그랜드투어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교수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국부론》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부론》은 글래스고 대학에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스미스는 버클 공의 대륙여행에 수행교사로 따라나섰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륙을 밟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에 그는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직을 내던지고 대륙 견문의 길에 올랐습니다. 스미스의 대륙여행은 《국부론》 탄생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하였을까. (다카시마 젠야의 《아담 스미스》 p.44)
다카시마 젠야의 《아담 스미스》를 읽을 때는 이 여행이 그랜드투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부분을 읽어보았습니다. 위 문장만 보더라도 그랜드투어는 정말 소수의 특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몇 달 간의 유럽 여행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만, 과거처럼 일부 귀족들의 특권만은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방학 때 자녀를 데리고 짧게라도 외국을 다녀올 수 있는 분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굳이 자녀와 함께가 아니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그랜드투어는 버클 공보다 아담 스미스에게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위 글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랜드투어는 자녀를 위한 교육문화여행이지만, 언제나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우는 법입니다.
한때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끼고 국내 여행을 하던 것이 유행이었던 것처럼, 《그랜드투어》를 끼고 유럽을 한번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