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가 즉위하는 날 대신들을 소견하면서 뱉은 한 마디였습니다. 임오년(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은 해) 이후 하루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간직해 온 한 마디였습니다. 이 일성(一聲)에 대신들은 경악했습니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노론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마치 14년 전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죽은 사도세자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한중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恨’中錄이라 알고 있을 만큼 혜경궁 홍씨의 한 많은 일생을 담고 있는 작품, 언문으로 쓰여 있고 그 문체가 우아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이 선명해 산문문학의 정수로까지 평가되고 있는 그 작품입니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세자빈 혜경궁 홍씨가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기록, 세자의 정신병이 초래한 비극을 통탄하는 한 맺힌 부인의 기록은 후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사도세자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이 사라진 자리를 『한중록(閑中錄)』이 메웠습니다. ‘정신병자 사도세자’에 대한 기록 『한중록』은 그렇게 진실이 되었습니다.
제 목 : 사도세자의 고백
지은이 : 이덕일
펴낸곳 : 휴머니스트 / 2004.3.15 초판 발행, 2007.7.23 발행 초판 12쇄를 읽음 ₩13,000
『사도세자의 고백』의 저자 이덕일은 머리말에서 이 한중록의 진실을 의심합니다. 세자의 부인이긴 하지만 혜경궁 홍씨는 당시 지배세력이었던 노론의 영수 홍봉한의 딸, 사도세자는 소론, 따라서 그 기록은 승자이자 가해자의 기록일 수 있다는 저자 이덕일의 의구심에서 이 책은 시작됩니다. 저자는 관련 기록을 찾았으며, 정치적 승자 노론이 주도하여 쓴 『영조실록』에서 사도세자가 성군의 자질을 지녔을지도 모를 세자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영조실록』과 『한중록』 사이의 간극, 누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이 책은 차근차근 그 진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인조 반정 이후 효종-현종-숙종으로 이어지는 혈맥을 ‘삼종의 혈맥’이라고 했습니다. 영조는 삼종의 혈맥을 잇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조의 선대왕인 경종은 빠져있습니다. 경종은 영조의 이복형이며, 재위 4년만에 죽었습니다. 영조는 재위 기간 내내 경종 독살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삼종의 혈맥’이라는 말에는 결국 영조의 왕위 계승이 정당하다는 자기 방어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그것이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조가 맏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것은 거의 정설입니다. 그런뒤 세손인 소현세자 맏아들 대신 자신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잇게 하니 이가 바로 효종, 삼종의 혈맥의 시조입니다. 현종과 숙종 때 일어난 그 유명한 1,2차 예송논쟁은 단순히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논쟁이 아니라 효종의 왕위 계승의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었습니다. 여기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으니, 이로부터 효종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것은 곧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이때 ‘삼종의 혈맥’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삼종의 혈맥은 자식이 귀했습니다. 효종 이래로 외아들에서 외아들로 이어져왔습니다. 영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첫아들 효장세자가 어려서 죽은 뒤 후사가 없어 불안하던 차에 드디어 왕자가 태어났습니다. 늘 눈물을 달고 다녔던 영조는 이날도 분명 울었을 것입니다. 왕자는 태어난 달일 원자로 책봉되고, 다음 해 생후 14개월만에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파격입니다. 축복을 받고 태어난 세자는 자라면서 그 총명함이 드러나며 성군으로 커가고 있었습니다. 영조는 세자의 비범함에 감탄하고 효성에 감동하여 이를 늘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영조는 탕평책으로 유명합니다. 노론과 소론 그 한쪽만을 두둔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세력이 막강한 노론이 거의 독차지하고 일부를 소론에게 맡기는 꼴이었지만, 그러나 영조는 재위 기간 내내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논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놓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영조는 그렇게 오랫동안 임금 노릇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쟁에 신물이 난 영조는 걸핏하면 양위 소동을 벌였습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쉬겠다는 말에 신하들이 “예”하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 신하들은 그때마다 무조건 울부짖으며 하교를 거두어달라고 소리치며 대죄해야 했습니다. 이를 두고 영조의 성격이 괴팍하다 생각하는 것은 짧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걸핏하면 울고 왕노릇 못하겠다고 소동을 벌여야만 되는 조선후기 정국의 말기적 상황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고르는 ‘택군’,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왕이 되었을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아내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세자가 성군으로 크기를 영조는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영조 25년, 세자 나이 열 다섯 살 때 영조는 대리청정을 명합니다. 사도세자가 국정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영조는 자신이 죽기 전에 세자를 성군으로 만들기 위한 모든 환경을 만들려 했습니다.
영조가 없는 자리에서 세자가 처음으로 대신을 만나던 날, 신하들은 모두 움츠리고 엎드려 머리를 들지 못했습니다. 영조에게 입시할 때보다 더욱 엄숙하고 공손했습니다. 세자의 성격 때문입니다. 영조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눈물도 많은데 비해 세자는 과묵했습니다. 또한 표정에 위엄이 있어 얼굴빛과 말솜씨로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신하들은 영조보다 세자를 더 두려워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세자는 점점 소론과 친해졌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합당해 보였습니다. 스무살을 눈앞에 둔 세자는 확연히 소론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조 31년, 영조는 탕평책을 포기하고 맙니다. 나주 벽서 사건을 계기로 30년 공들인 탕평책을 포기하고 노론 일당 독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나주 벽서 사건은 영조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경종의 신하임을 자칭하는 나주 목사 이하징의 말에 영조가 이성을 잃은 사건입니다. 매일같이 국청 뜰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성문 밖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죄인들의 목이 걸렸습니다. 소론을 지지하는 세자에게 커다란 위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영조는 과거에 자신을 역모로 몰았으나 그래도 탕평책으로 포용해 왔던 소론을 더 이상 끌어안을 수 없는 이유를 세자가 이해해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나주 벽서 사건을 계기로 한 노론의 소론 박멸 계획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종 시절 노론은 충분히 역적으로 공격받을 소지가 있었습니다. 희빈 장씨의 아들 경종은 태어나자마자 소론이라고 낙인 찍혔고, 노론은 경종 제거에 온 힘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위 4년만에 죽었습니다. 사도세자는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자는 나주 벽서 사건의 확대를 반대했습니다. 광기 어린 살육을 조장하는 주청을 하나하나 거부했습니다. 소론이 보기에 세자는 뚜렷한 세계관을 가진 후계자이며, 그들의 목숨을 지켜줄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자는 힘에 부쳤습니다.
어느새 노론에게 세자는 제거해야 할 정적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영조는 대비와 왕비, 사위까지 한달 새에 잃어버리는 겹초상을 당합니다. 이 즈음 열다섯살의 어린 신부를 맞아들이니, 이가 정순왕후 김씨입니다. 노론 김한구의 딸입니다. 정순왕후 김씨는 김한구의 사주를 받아 즉각 세자와의 권력 투쟁에 나섰습니다. 아마 김씨의 베갯머리송사도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세자의 장인 홍봉한과 혜경궁 홍씨도 세자를 버리고 정순왕후 가와 결탁합니다. 사도세자는 그 어느 곳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쓰다보니 새벽시간이 모두 가버렸습니다. 출근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원래는, 눈물 많은 영조의 부정마저 어찌할 수 없었던 권력의 무상함을, 사위를 뒤주 속에에 가둔 장인, 남편마저 버린 권력의 덧없음에 대해 몇 마디 하려 했었습니다. 엉뚱하게도 어쩌다 책의 줄거리 요약이 돼버렸습니다. 마무리도 제대로 못한 채. 두서 없는 글, 부끄럽습니다.
영조 38년 윤 5월 13일부터 21일까지, 사도세자는 무려 8일 동안이나 뒤주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한여름 밀폐된 공간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분노에 싸여 죽어갔습니다. 세자를 뒤주 속에서 죽게한 사상 초유의 이 사건에서 뒤주 속에 세자를 가두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세자의 장인 홍봉한이었습니다. 그런 홍봉한을 딸인 혜경궁 홍씨가 구구절절 변명한 것이 바로 『한중록』입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와 그의 아들 순조를 위해서.
『조선왕 독살사건』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사학자 이덕일의 책은 신선하고 흥미진진합니다. 그의 다른 책들을 더 찾아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