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0년 6월 1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열 가지 비법보다 중요한 ‘한 가지 실천’
나는 학부모교육전문가라는 이름으로 300회가 넘는 강연을 하고, 매일 같이 상담을 하고 글을 쓴다. 이 일은 매우 의미가 있고 즐거운 일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많다. 내가 말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방법적인 면에만 치중하는 부모들을 볼 때 그러하다. 내가 강연을 하거나 학부모 대화를 하면서 깜짝 놀라는 것은, 엄마들의 지식이 이미 전문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 지금 아는 것만큼이라도 실천하면 되는데, 그것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더 알려 한다. 나는 이것이 쇼핑 중독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이 있음에도 물건을 또 사는 쇼핑 중독과 다를 바 없다.
성공은 행동하는 자의 몫이다. 행동하지 않고 성공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실천 없이 아이의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지난주에 붙임쪽지(포스트잇) 활용법을 소개했다. 일을 시작할 때 꾸물거리는 아이, 시작한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처방이었다. 과제개시, 목표집중, 계획하기, 우선순위정하기 등의 실행기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혹시 실천을 해보았는가. 실천하지 않은 채 여전히 아이의 꾸물거림과 끈기 없음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부모의 실천 없이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의도는 부질없다.
그래서 오늘은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다른 사람의 예를 드는 것보다 나와 우리 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휴일 오전이다. 나는 칼럼을 쓰고 있고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는 맞은편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의 등 뒤 거실 한쪽에는 시간표가 그려진 큰 종이가 있고, 그 위에는 아이의 할 일을 적어놓은 노란색 붙임쪽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 옆에도 파란색 붙임쪽지에 할 일을 적어놓은 시간표가 하나 있는데 아빠의 계획표다. 계획표를 나란히 붙인 것은 아빠도 함께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침밥을 먹기 전 딸과 나는 하루 일을 계획했고, 그 일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칼럼을 쓰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은 아이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 아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대신 특별한 보상을 마련했다. 아이가 계획한 일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용돈을 주기로 했다. 과제당 50원에서 100원을 책정했다. 오늘 계획한 모든 일을 끝내는 데 약 7시간이 소요되고, 700원의 용돈이 생긴다. 웬만한 과자 한 봉지 값도 되지 않지만, 아이는 어차피 해야 할 일에 용돈까지 생긴다고 좋아한다. 나는 이런 포상금을 항상 지급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일이지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스스로 세운 계획을 실천할 때 이미 내적 보상을 받는다. 스스로 이미 기쁘다. 이 기쁨을 넘어서는 외적 보상은 위험하다. 외적 보상이 사라지면 그 일을 할 동기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외적 보상은 내적 보상을 더해주는 한도 내에서 적절히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아이가 과제를 하나씩 끝날 때마다 “우와! 대단한데!”, “할 일을 끝내고 나니까 기분이 좋겠다.”와 같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말을 한다. “힘들었겠다.”하면서 꼭 껴안아주기도 한다. “잘했다.”는 평가성 언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칼럼 쓰기가 끝나면 나는 아이 옆에서 책을 읽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아이가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 책을 덮고 가르쳐 줄 것이다. 최소한 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조심한다. 내가 아이를 지도하는 방법의 핵심은 ‘함께하기’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자신을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 아직 그런 개념이 서있지 않다. 처음에는 부모가 하라니까 하는 것이고, 하다 보니 어떤 과목은 공부하는 재미가 붙기도 한다. 물론 재미없는 과목도 여전히 있다. 재미있는 과목은 더 잘하도록 격려하고, 어려워하는 과목이라도 일정한 노력은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특별한 방법이 따로 없다. 따뜻하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바깥 활동을 즐기지 않는 나는 수많은 교육방법 중 ‘공부할 때 함께하기’를 선택했다. 이것만이라도 잘하리라 다짐하고 노력한다.
나는 학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 한다. 그러나 그 많은 것들을 나조차도 모두 실천하지는 못한다. 열 가지를 아는 것보다 한 가지라도 실천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됨을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수많은 방법들 중 꼭 필요한 한 가지를 선택하자. 행동에 옮기자. 그리고 지속하자. 습관의 근육이 만들어질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