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서화 에세이 – 처음처럼

한달 넘게 독서노트를 쉬었습니다. 그 사이 짬짬이 몇 권의 책을 보았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과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를 제외하면 주로 마케팅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따로 정리할 시간이 없었던 건 새벽을 잃어버린 까닭이었습니다. 불규칙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일어날 시간에 잠이 들고, 밤새 잠을 설친 까닭에 아침이 그리 상쾌하지 않은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새벽을 사수하는 오기는 부리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나마 내 몸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내 몸을 위한 작은 배려가 결국은 한 달 이상의 부자연스러운 라이프 사이클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오늘 하루는 내일에 영향을 주었고, 내일은 또 그 다음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복되는 것은 곧 습관이 됩니다. 새벽형 인간과 날밤형 인간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의 차이입니다.

이럴 땐 과감한 단절이 필요합니다. 사리물고 연속의 가운데를 칼로 후려치는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일찍 자야하고, 그 다음날 또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문제는 일찍 자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일찍 일어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경험상 생활의 리듬이 깨어졌을 때는, 무리를 해서라도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일찍 잠드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제   목 : 신영복 서화 에세이 – 처음처럼
   지은이 : 신영복 글·그림 / 이승혁·장지숙 엮음
   펴낸곳 : 랜덤하우스코리아 (초판 출간일 2007.2.1 / 2007.2.27일刊 초판 5쇄를 읽음) ₩12,000


습관은 참 무섭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 210쪽에 <김유신의 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설명은 이러합니다.

    김유신의 말은 천관녀 집 문 앞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과거의 답습이 불러온 비극입니다.

말에게는 비극이요, 김유신에게는 과감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왜 스스로를 내치지 않고 애꿎은 말을 참했냐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말놀이에 불과합니다. 딴죽도 성찰의 과정일 때만 유효합니다.

출근길에 탄천을 따라 전철역까지 가는 데 20분 정도 걸립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걷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입니다. 그런데 후반의 10분 정도는 대로를 따라 걸어야 하는데 갑자기 들이키는 매캐한 매연에 불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새 길을 발견했습니다. 대로로 올라가기 전에 탄천을 따라 좀 더 걷는 코스입니다. 아침의 상쾌함을 더 오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다 보면 좋은 길을 놔두고 예전처럼 일찍 대로에 접어들어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을 맡고 있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습관은 참 무섭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 이미 내 몸처럼 굳어진 수많은 습관들로 인해 우리의 하루가 살아지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의 답습은, 어느 순간에 비극으로 찾아옵니다.
늘 깨어있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각성(覺醒)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達成)입니다. (p.167)

《처음처럼》은 신영복 선생의 서화 모음집입니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눈에 익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 상당 부분은 신영복 선생의 홈페이지 www.shinyoungbok.pe.kr 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책으로서 한 권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새벽에, 잠들기 전에, 가끔 답답할 때, 괴로울 때, 하릴 없을 때 가끔 들춰보다 예기치 않은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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