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팠습니다. 마음이 한참 아프더니 마침내 몸이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신의 흐트러짐으로부터 파생된 신체 리듬의 불규칙함이 그 원인인데, 생각해보니 벌써 한 달 반이나 되었습니다.
아프다는 건 내 몸이 균형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낫는다는 건 내 몸의 균형을 되찾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정신의 흐트러짐이 바로잡혀 나가니, 다행히 제 모습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 않아 보입니다.
한동안 미련없이 잠을 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문득 잠에서 깨었습니다. 어제 읽던 책(김훈의 《남한산성》)을 펼치려다 오랜만에 독서노트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낡은 노트북을 켰습니다.
제 목 : 고우영 십팔사략
지은이 : 고우영 글·그림
펴낸곳 : 애니북스 (초판 출간일 2004.11.5 / 2007.1.27일刊 초판 11쇄를 읽음)
각권 ₩7,500 / 세트 ₩75,000
마음과 몸이 편치 않을 때 고우영의 만화가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긴 텍스트가 눈에서 서걱거려 읽기 어려울 때 고우영의 만화는 쉬웠습니다. 쉽게 읽히되 헛되지 않았습니다. 《삼국지》와 《십팔사략》을 읽었는데, 오늘은 《십팔사략》 얘기를 할까 합니다.
《십팔사략》은 원본 자체가 요약본입니다. 저자가 증선지(曾先之)인데, 남송(南宋) 말에서 원(元)나라 초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태고(太古)로부터 그가 살았던 송대(宋代) 말기까지의 긴 역사를 짧게 요약한 것입니다. 원래부터가 초학자용(初學者用) 역사서로 쉽게 만들어졌지만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취사선택함에 그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의 역사를 짧게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수요는 꾸준한 것 같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꽤나 여럿 있으니 말입니다.
고우영 만화본의 1권은 삼황오제에서 서주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4권은 《열국지》의 무대가 되는 동주(東周) 시대로부터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시황의 통일제국까지를, 5권은 《초한지》의 무대가 되는 항우와 유비의 초한전을, 6~7권은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후한에서 위·촉·오의 삼국시대까지를, 8~9권은 5호16국·남북조시대를 거쳐 당나라까지, 10권은 《수호지》의 무대가 되는 송나라의 이야기입니다.
중국 고전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어디서 한번쯤은 귀동냥했을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그것을 굴비 엮듯 순서대로 주욱 엮어놓은 것이 《십팔사략》입니다. 파편화된 역사 지식의 아귀를 맞추는 데는 다소 의미가 있지만, 그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나치게 간단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읽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단순함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습니다. 부담없이 펴들어 고사성어 한줄 익히고 잘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뒤끝이 그리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피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죽고 죽였지만, 거기에는 대의명분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고, 그 중 몇몇 성군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거개가 찬탈과 음탕함의 역사였습니다. 긴 역사를 지나치게 짧게 다루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제대로 그리지 못하였으니, 수없이 명멸했던 피의 그림자들만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역사를 한번에 훑으니, 현재의 평온함이 결코 정상적이지 않음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피의 역사는 그 형식이 조금 바뀌었을 뿐 여전히 진행형이며, 역사는 그 속성상 안정됨이 비정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