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으로 세상을 두드리다

국어사전을 보면 ‘사물놀이’를 ‘네 사람이 각기 꽹과리, 징, 장구, 북을 가지고 어우러져 치는 놀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보통명사입니다. 모두 그렇게들 알고 있습니다.

‘사물놀이’의 탄생에 대해서는 대한민속국악사 홈페이지(gukaksa.co.kr)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1978년 2월, 소극장 공간사랑 주최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이 개최되었을 때에, 4명의 젊은 국악인들의 연주가 소개되었다. 꽹과리에 김용배, 장구에 김덕수, 북에 이광수, 징에 최종실로 구성된 이들은 “웃다리 풍물-경기 충청가락”을 발표하였다.
첫 공연이 있은 2개월후인 78년4월 같은 장소에서 이들의 두번째 공연이 끝났을 때에 이들과 여러 지기들은 이 팀의 이름으로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탄생시켰다. “사물”이란 이들이 연주하는 4개의 악기를 뜻하며, “놀이”란 농악대나 걸립패들의 공연을 지칭해 온 낱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된 “사물놀이”라는 단어는 이들의 성공적인 공연활동과 더불어 이제는 마치 “소규모의 농악 또는 걸립패 형태의 전통공연양식”처럼 보통명사화하여 쓰여지게 되었다.


   제   목 : 신명으로 세상을 두드리다
   지은이 : 김덕수
   펴낸곳 : 김영사 / 2007.9.1 초판 발행, 2007.9.6 발행 초판 2쇄를 읽음  ₩12,000


죽는 날까지 신명으로 살기 위해 자신의 호를 ‘신명(神命)’이라 지은 사내, 어느덧 오십 줄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무대에 오르면 전율이 느껴져 참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내, 온 지구가 내 집이고 무대라는 글로벌 광대 김덕수의 인생을 담은 『신명으로 세상을 두드리다』를 읽었습니다.

얼마 전 충무아트홀에서는 <김덕수 예인인생 50주년 기념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예인인생 5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위한 그의 자서전입니다.

다섯 살에 남사당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접어든 이 길이 벌써 50년입니다. 지금은 세계가 열광하는 사물놀이의 창시자로 통하지만, 사물놀이의 탄생 과정은 ‘이단’이었습니다. 70년대 ‘데모의 앞잡이’라며 열린공간에서 풍물 연주가 금지되자 소극장으로 들어가 겨우 네 명이 네 가지의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사물놀이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때 사물놀이를 통해 전통을 재창조한 이유를 ‘시대를 읽는 눈’이이 있어서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젊은 날, 내가 원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밥 굶을 걱정 없이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p.187)

그의 연주를 단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진실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모든 위대한 성취의 시작은 ‘열정’이라고 믿습니다.

김덕수 예인인생 50년을 담은 이 책은 곧 한 개인의 50년 열정의 기록이자 우리문화 50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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