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또 하나의 서비스를 오픈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몇 일동안 몸과 마음이 참 힘들었습니다.
서비스를 오픈하고 정신이 없이 멍~~~~한 상태에서, 얼마 전에 읽은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리뷰를 쓰려 합니다.
제 목 :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지은이 : 이성숙
펴낸곳 : 책세상 (초판 출간일 2002.4.20 | 2002.9.10刊 초판 2쇄를 읽음) ₩3,900
가끔 TV에서 윤락 여성과 그 실태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차라리 완전히 양성화하고 사창 대신 공창제를 도입하는 것이 어떤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없고, 공창제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도 없었습니다.그러나 이 책을 통해 공창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윤락 또는 매매춘의 근본적 문제 해결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구의 역사를 볼 때 공창제의 가장 큰 특징은, “한번 매춘부였던 사람은 영원히 매춘부”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입니다. 매춘 여성을 관에서 기록하여 관리하는 것이니만큼 이런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매춘이 무슨 평생 직업도 아닌데 말입니다.
주제가 그러해서인지(?) 참 흥미있게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매매춘의 역사를 알 수 있었고, 매매춘의 근절을 위한 견해를 통해 그 기본적인 사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춘 여성들을 위험한 조건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권위주의적 계몽주의 페미니즘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 속에, 매춘 여성들은 자아 의식이 전혀 없는, 강제된 조건 속에서 침묵하고 무기력하며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의 한계는, “자본주의 이전에도 매매춘은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또한 매매춘을 자본주의 사회제도만큼 “나쁜” 것으로 규정했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저자는 매매춘이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업적인 섹스의 형태를 추방하기는 어렵다(p.122)”는 것이 그녀의 생각입니다.
매매춘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러나 저자 역시 결론을 명쾌하게 내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가장 그럴듯한 결론은 매매춘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매매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있다,도 아니고 있는 것 같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엄청난 문제를 몇 마디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역시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르겠다.(p.123)
제목 그대로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운을 띄운 것이 불과합니다. 그러나 짧은 글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