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바쁘게 지내는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할 일이 많고, 바쁘고, 그보다는 내가 해야할 몫이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그러합니다.
오전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집니다. 천둥 소리가 요란합니다. 당직이라 회사에 나와 있습니다. 급한 일 먼저 끝내놓고, 한동안 못 썼던 서평을 쓰려 합니다.
책을 읽고 하루만 지나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문학 작품이라면 가슴에 진~한 무언가라도 남아있겠지만, 이런 류의 책은 가슴에 남을 만한 그 무엇은 없습니다. 그래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워낙 명쾌하고 간결하여 그 주제만큼은 쉽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지은이 : 다치바나 다카시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초판 출간일 2002.11.20 | 2003.12.23刊 초판 4쇄를 읽음) ₩13,000
요 근래 계속해서 다치바나 다카시 책을 읽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이 좀 도발적인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입니다. 주제는 꽤 단순합니다. 일본의 대학생들이 전반적으로 학력이 매우 저하되었으며, 그 원인은 문부성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고등학교 때부터 폭넓은 지식(교양)을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도쿄대의 역사와 현대인의 교양에 대한 정의를 곁들여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입시 경쟁 또한 우리나라와 별반 다른 게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문부성의 정책 –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입시 과목을 줄이고 시험의 난이도도 낮춘 정도로 대충 짐작하는 정도의 정책 – 이 반드시 그릇된 것이냐라는 데에는 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그것이 전반적인 학력의 저하로 귀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일본이 망한다는 식의 〈지적 망국론〉은 논리의 비약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저자의 의견이 전혀 얼토당토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과거의 기준으로 볼 때 학력이 저하되어, 대학생이 되더라도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문부성의 잘못된 정책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상당한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입시 제도 자체를 개혁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입시로 귀결되는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과목의 수를 늘이고 그 수준을 높이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작은 나라에 인구가 많은, 그러면서 고속 성장이 필요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이며, 이런 나라의 입시 제도는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교양을 쌓으라고 한들, 교양이라는 입시 과목이 생기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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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쳐 놓은 부분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던 시대는 끝났다.(…)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의 한 일부일 뿐이다.(…) 고등교육 유비쿼터스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유비쿼터스 대학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 한, 게우른 자는 즉시 낙오된다. 일반 대학에서는 교양이 교육으로서 제공되는 것이지만, 유비쿼터스 대학에서의 교양은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p.27~29)
‘두 문화(문과 계열과 이과 계열)’는 60년 전에 이미 위험한 분리를 시작했다. 두 문화가 서로 대화를 중지한 지 이미 30년이 흘렀다. (p.34)
한때, 지금이야말로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라고 하여 모두 스페셜리스트를 동경하면서 ‘제너럴리스트는 모든 분야에 사용할 수 있어도 큰 도움은 되지 않는 대중적인 지적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견해가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그것은 낮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가리키는 표현일 뿐이다. 스페셜리스트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도 존재하며,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결국 제너럴리스트가 움직이는 것이다.(p.45)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기본은 언어 능력에 있다. (p.246)
앞으로의 지적 장래는 전문 지식 부분은 더욱 심화시켜가지만, 동시에 시야는 갈수록 좁아지게 된다. (p.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