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강독 1] 학습과 실천
<논어> 20편의 처음이 <학이> 편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다시피 <학이> 편이 맨 처음 나오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학이> 편이니까 무언가 배움에 관한 내용이겠거니 짐작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뒤에는 효|孝|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예|禮|에 대해 말하다가, 정치에 대해 말하는 등 그야말로 체계가 없습니다. 배움에 대한 말은 오히려 다른 편 군데군데 흩어져 있습니다.
우선 <논어>하면 떠오르는 <학이> 편, 첫 문장을 보겠습니다.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학이1-1>
앞에서 살펴봤듯이, 공자는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아버지도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나이 열다섯에 동네 잔치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계씨는 사|士|를 대접하려 한 것이다. 감히 네가 올 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던 양호의 말이,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가슴에 사무쳤을지 모릅니다.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나이 삼십에 홀로 섰으며, 마흔 살에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위정2-4>
공교롭게도 공자가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열다섯 살 때가 바로 문전박대를 당한 서러움이 있었던 바로 그 때입니다. 그 후로 공자는 오로지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만세의 목탁이 되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공자를 공자답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학|學|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의 목적 중의 하나가 신분 상승입니다. 배우는 것 그 자체가 기쁜 것도 사실이지만, 별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공부를 하여 좋은 데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사는 것을 꿈꿉니다. 공자가 살던 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자 문하에 삼삼오오 모여드는 제자들 중에, 간혹 오로지 공부 그 자체에 뜻이 있어 오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공부를 하여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공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공자도 평생에 걸쳐 군주와 대부 앞에서 유세를 하며 정계 진출을 꿈꾸었습니다. 그 꿈이 결국 좌절되어 결국 스스로 은퇴 선언을 하고, 국내 최대 사설 학원장으로 여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공자가 살던 때에 와서야 공부하는 사람들이 부각되었을까요? 유가니 도가니 묵가니 하는 제자백가가 출현했을까요? 관학을 대신한 최초의 사학인 공자 학원은 왜 이때 생겨났을까요?
이미 앞서 살펴보았듯이,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종법제도가 무너지고,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던 격변기였습니다. 노예제 사회나 철저한 종법제도와 같이 엄격한 신분 위계가 있을 때에는 학습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신분이 상승될 여지가 전혀 없는 사회니까요. <논어>의 첫 머리에서 ‘학습’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기존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금이 가고 있는 사회적 격변기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원래의 문장으로 돌아가서 원문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학이시습지’를 저는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오늘날에는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로 쓰이고 있지만, 대개의 한자어가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한 글자로 그 뜻을 대신하였습니다. 학|學|과 습|習|의 의미가 서로 다르게 사용된 것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시|時|와 습|習|의 의미입니다. 시|時|는 ‘제때에’ 또는 ‘때맞춰’라는 의미입니다. 대개 다른 책에서 ‘때때로’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면 뜻이 이상해집니다. ‘때때로’는 ‘가끔’이라는 뜻입니다. 배우고 나서 가끔, 생각나면 익힌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또한 습|習|이라는 말 역시 단순히 ‘익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저 복습한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공자 시대에 요즘과 같이 국.영.수 과목이 있어, 수업 시간에 그것을 배우고, 집에서 틈날 때마다 복습하고, 나중에 시험 치고……. 이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격변기를 통해 처음으로 ‘배움|學|’ 그 자체가 처음으로 대두된 때였습니다. 배움이라는 게 처음 생겼는데 무슨 변변한 커리큘럼이 있었겠습니까. 공자가 말년에 기존의 책들을 엮어 시경, 서경, 주역 등 육경을 편찬하기는 했으나, 이것이 유가의 커리큘럼으로 정식 채택된 것은 훗날의 일입니다. 그래서 습|習|의 의미를, 그냥 복습하다는 뜻이 아니라, ‘실천하다’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배운 것을 때맞춰 실천하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배운 것을 실천해 보고나서야 전에 배운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배웠던 것을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子曰,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칙망,사이불학칙태” <위정2-15>
여기서 해석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사|思|입니다. 대개는 그저 ‘생각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서, 배워서 나름대로 생각하여 정리해야만 자기 것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배운 것을 그냥 생각만 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 될까요? 여기서도 사|思|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뜻이 명확해집니다. 즉, 배운 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사랑과 이별의 고통을 열심히 가르친들, 그 아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해도 그 의미를 제대로 알 리 만무합니다. 나중에 커서 사랑을 직접 해보고, 이별의 고통을 겪어보고 나서야 그 의미를 진정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배우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얕은 경험적 지식만을 믿고 배우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결국 공자는 배운 것은 실천을 통해야만 그 뜻이 명확해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배우는 걸까요?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배우는 것은 곧 알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아는 것’은 도대체 뭘까요? 뚱딴지같지만, 바로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이 철학의 근본 주제이기도 합니다.
<논어> 강독, 두 번째 주제는, ‘앎이란 무엇인가?’입니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