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08] 공자 vs. 소크라테스

공자 vs. 소크라테스

소피스트를 궤변론자에서 철인으로, 사|士|를 소인에서 군자로 만들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와 공자는 닮은 점이 참 많습니다.

우선 그들은 자신의 말을 직접 책으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묶어 <논어>를 만들었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스승을 주인공으로 세워 그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프로타고라스> 등의 <대화편>이 그것입니다. 모두 제자 또는 제자 집단의 기억 의해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짐작할 뿐입니다.

두 사람은 생김새도 특이합니다.
공자는 짱구 머리입니다. 머리 가운데가 움푹 파였다고 합니다. 키는 2미터 10센티의 거구. 상상 속의 공자 이미지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공자 아버지는 군인이었습니다. 피는 속일 수 없었나 봅니다. 소크라테스의 용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키는 작고 코는 들창코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한 소피스트가 ‘쓸모 있는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가장 아름답다. 내 콧구멍은 커서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주특기인 농담으로 기죽이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말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범상치 않은 용모, 직설적으로 말하면 추한 용모의 사나이였습니다.

용모는 그러했지만 그들의 체력과 정신력은 실로 강했습니다. 공자는 나이 오십 대 중반에, 젊은이도 하기 힘든 세일즈를 하러 다닙니다. 이 때 세일즈는 무슨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자신을 써달라는 것입니다. 나를 쓰면 이 나라를 안정되고 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유세하며 다닙니다. 무려 14년 동안 여행을 합니다. 그것도 일촉즉발의 전쟁 지역을 말입니다. 어지간한 정신력과 체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거의 주신|酒神|의 경지였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와 술을 마셔 이긴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보통의 체력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 스스로 독배를 들어 죽어갈 때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범인이 상상하기 힘든 정신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고매한 인품을 지녔다고 해서 가정을 잘 돌보았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자도 이혼을 했고, 그의 아들도 이혼을 했고, 또 손자인 자사|子思|도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한 것 자체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지만, 난세를 극복하고자 했던 그도 결국은 가정에서만큼은 그리 성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큰 뜻을 가진 공자를 평범한 여인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돈에 무관심하고, 예절은 숨막히도록 엄격하고, 식성도 까다롭고, 없는 살림에 제자들만 들락날락거렸으니 질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성스럽게 죽어간 예수와 부처에 비하면, 좋게 말해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중산층 출신입니다. 공자보다는 경제적 출발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너 자신을 알라’라는 신탁을 받은 뒤부터는 길거리에서 시장에서, 온종일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얘기를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쓸 데 없이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내가 보기에 얼마나 한심했을까요? 가지고 있던 재산은 다 써버리고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말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아내의 바가지는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어찌 악처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 많았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그들은 사람들을 바로잡는 것이 필생의 과업이었습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이자 주특기였습니다.
공자는 인생 그 자체가 파란만장합니다. 남들이 손자를 보고 집에서 세월을 소요할 나이에 전 세계를 떠돌아다닙니다. 온 나라가 전쟁 중이었던 춘추전국시대에 말입니다. 이 나라 저 나라 옮겨가며 제후에게, 대부에게 바른말만 하고 돌아다닙니다. 바른말은 귀에 거슬리는 법입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맞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천수를 누리고 죽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뒤에서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맙니다.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 행적은 모호합니다.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낯익은 건 늙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거리나 체육관에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대화의 끝은 언제나 ‘아직도 그것은 모른다’라고 하는 무지|無知|의 고백을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때 상대방은 소크라테스가 말은 저렇게 해도 실은 알고 있을 거라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고 싶은 건, 나도 모르지만 당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역시 틀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자신의  무지를 폭로당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음흉한(?) 수법에 분노하게 됩니다. 말 할 때마다 적을 한 사람씩 만들고 다닌 셈입니다. 결국 그는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을 부정했다’는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합니다.

(이번 회까지가 논어 이해를 위한 역사지식입니다. 다음 회부터는 공자 이야기입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