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단군조선은 과연 실재했을까? 단군조선과 고조선은 같은 말인가? 기자조선도 실재했을까? 위만은 연나라 사람인가, 조선인인가? 그리고 위만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 그 결말은 어땠을까? 과연 고조선이 정말 있었다면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도대체 한사군의 위치는 어디였던가? 고조선은 크기는?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저는 단군조선에 대해 신화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단기의 시작인 기원전 2,333년은 그저 우리의 바람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사기』 등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우리에게 단군조선보다 기자조선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고조선과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고조선은 그저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古)자를 더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건데, 고조선은 그저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재구성한 신화일 뿐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저는 이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제   목 :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지은이 : 이덕일, 김병기
   펴낸곳 : 위즈덤하우스 / 2006.11.30 초판 발행, 2007.5.30 발행 초판 5쇄를 읽음  ₩13,000


국사 교과서에는 단군조선이 없습니다. 단군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그렇게 나와있다고, 마치 남말 하듯이 나와 있습니다. 신화는 그 시대 사람들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데, 단군 기록도 마찬가지로 청동기 시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조선의 성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고조선이 청동기 시대에 성립되었다는 것인데,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0세기, 만주지역은 기원전 15~13세기에 시작되었다고 국사교과서는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조선은 아무리 빨라야 기원전 15세기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쓰는 기원전 2,333년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국사교과서는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삼국유사』는 기원전 24세기경에 고조선이 성립되었다고 하는데, 우리의 국사교과서와 자그마치 900년에서 1,400년의 간극이 생기게 됩니다.

국사교과서는 왜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식민사학과 중화사학의 잔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정면 공격을 시도합니다. 우리에게 단군조선이 없다면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없다는 식의 무조건적인 애국주의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저는 이 책으로부터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기회에 단군조선으로 시작된 우리 고조선의 역사가 실재의 역사였으며, 고조선의 강역이 상상 외로 컸음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이 글은 그간의 연구사와 문헌사료, 고고학 사료와 현지 답사를 토대로 고조선의 실제 모습에 하나하나 그려내고 있습니다. 만주는 물론 내몽고에서부터 한반도 남단까지 광활했던 고조선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한 여타의 대중적 역사서처럼 흥미진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학술서와 교과서 같은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서와 유적 유물에서 고조선이 역사와 크기를 추론합니다.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들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며 그 근거를 찾아 보여줍니다.

기원전 2300여 년이라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삼국지』 <위서동이전> 등의 문헌사료는 물론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도 뒷받침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군조선의 실재를 부정하고 위만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보고 있는 남한 학계의 이른바 ‘통설’에 중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조선은 국호 자체가 기자 존숭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기자조선의 계승자라는 의미에서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다고 말합니다. 기자는 주나라 때의 성인인데, 그가 우리 땅에 와서 조선을 만들었으니 위대한 중국의 성인과 한 핏줄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나 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자가 동쪽으로 가서 조선을 건국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동쪽 조선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동쪽에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음을 뜻하고, 그 조선이 바로 단군조선인 것입니다. 고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가 저술되기 1천여 년보다 훨씬 전에 중국측 문헌사료에 이미 등장합니다. 『사기』, 『한서』 같은 정사는 물론,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걸친 시대를 포괄하는 『산해경』과 기원전 7세기 경의 것인 『관자』를 필두로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 고조선이 등장합니다. 또한 고조선의 표지(標識)유물인 고인돌과 청동검 등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서도 고조선의 건국 시기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조선의 멸망 당시의 도읍지가 어디였는지도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입니다. 현재의 ‘정설’은 준왕이 도주하던 당시의 도읍지가 오늘날의 평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나라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이른바 한사군(漢四郡)의 위치와 연계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고조선의 도읍지가 몇 차례 천도를 했지만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만주 지역 내에서 이동했다고 말합니다. 그 증거로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유사』 ‘마한조’의 기록과 고고학적 자료를 들어 멸망하기 직전의 위만조선은 평양 일대에 있지 않고 요동반도 서쪽 지역에 있었던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비록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켰다고는 하지만 명목상의 승리였을 뿐 조선의 영토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승리한 한나라 장수는 모두 처벌을 받았는데, 패배한 고조선의 지배층은 모두 후로 봉해졌다는 사실과, 그들이 후에 봉해진 지역이 오늘날의 산동반도에서 발해에 이르는 지역이라는 점이 그러합니다. 대개 항복한 인물에게는 항복한 그 지역을 봉지(封地)로 주었는데, 항복한 고조선 지배층의 봉지가 모두 산동지역이었다는 점은 한나라가 조선의 영토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한사군의 위치 중에서는 한사군의 수도인 낙랑군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식민사학자와 그들의 한국인 제자들은 낙랑군이 오늘날의 평양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서 발굴된 유적 유물은 모두 고조선이 멸망한 전한(前漢) 때의 것이 아니라 후한(後漢) 때의 것입니다. 『사기』에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의 기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자는 『수서』 <지리지>의 내용을 토대로 그 수성현이 현재의 창려현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요동반도 서쪽 지역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현재의 북한 지역인 한반도 북부까지 중국의 영토에 포함시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일제의 식민사관이나 현재의 동북공정의 주된 공격점이 고조선이라는 동일한 대상에 집중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관은 단군조선에 대해 침묵합니다. 단군조선의 실재를 부인하거나 그 공간을 한반도 내로 축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국사를 공격하는 목적, 즉 한국에 대한 자신들의 영토적 야욕을 채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고조선사는 바로 살아있는 현대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고조선사에서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고조선 왕실의 후예들은 부여와 고구려를 건국하고 한반도 남쪽의 유민들은 박혁거세와 손을 잡고 신라를 건국합니다. 광활한 만주 벌판에서 한반도 남단까지 고조선 후예들의 왕국은 계속되었습니다.
고조선은 신화 속의 나라가 아니라 기원전 20세기 전부터 실재했던, 서쪽으로는 난하(오늘날의 요서지방)에서 만주와 러시아 하발로프스키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서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린 대륙의 지배자였습니다.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세요!
연휴 끝나고 9월 27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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