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16.끝] 비록 점쟁이들은 외면했지만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

지금까지 《주역》을 읽기 위한 아주 기초가 되는 지식들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주역》에 대한 저의 이야기는 마칠까합니다. 《주역》으로 점을 제대로 치는 방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던 분이라면 실망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점치는 방법은 그 형식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동전을 던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설명 드릴 것도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할 도리를 다하고, 도저히 결정하기 힘든 두 가지 선택을 두고 치는 것이 점이니 그 형식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문제는 그 선택을 믿고 따르는 마음가짐에 있겠지요.

참고로 저는 아직 점을 치지 않습니다. 나의 바람과 반대되는 점괘가 나왔을 때 그 점괘를 순수하게 믿고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내가 바라는 것을 내 의지로 만들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어떠한 일이 닥칠지도 모르니, 언젠가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점을 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점치는 행위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던진 동전이, 아무렇게나 뽑은 산가지가 내 인생의 결정적 선택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은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점괘는 그 자체로 우연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자신의 삶에 비추어 깊게 생각하는 과정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깊은 반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말한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의 마음과 실제 벌어지는 일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관계에 대해 융은 원인과 결과를 뚜렷이 구분하여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융은 이것을 ‘싱크로니시티’라고 불렀습니다. 우연히 같은 의미를 가진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이상한 일’이 바로 싱크로니시티입니다. 이를테면 점괘도 이와 같습니다. 아무렇게나 던진 동전, 그리고 그 결과인 점괘, 그 점괘에 해당되는 《주역》의 괘를 찾아 읽는 순간, ‘맞아, 바로 이것이었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과 점괘의 일치, 이것이 싱크로니시티입니다. 이제 그 선택은 확신이 되어 나의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갈등은 사라지고 확신에 따른 행동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융은 점성술과 초능력 따위를 믿었나 봅니다. 그의 동료인 프로이트가 꿈을 해몽하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점쟁이들은 외면했지만

《주역》은 비록 주술신앙에서 출발하였지만 자연철학과 실천도덕까지 포함한 독특한 성격의 철학서이자 수양서이자 처세술을 다룬 책입니다. 점술서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심오하여 일선 현장의 점쟁이들이 잘 활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점을 보려면 점책을, 사주를 보려면 사주책을 보는 것이 훨씬 편리합니다.

《주역》은 우주의 변화, 삶의 변화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흉|凶|을 피하고 길|吉|을 얻는 피흉취길(避凶取吉)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피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한 피고취락|避苦取樂|의 현실적인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면서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내용입니다. 점을 보고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근신하고 대처하면 피할 수 있습니다. 《주역》은 결코 변하지 않는 운명 따위는 말하지 않습니다. 우주 변화의 원리와 살아가는 이치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살아가는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주역》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지식과 경험에 따라 괘를 해석하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주역》은 평생을 두고 생각해야할 화두집입니다. 《주역》 책 한 권 달랑 읽고 점집을 차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평생 동안 《주역》을 공부하고도 수양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산 선생이 있고, 난괘|難卦| 중의 난괘인 산지박괘에서조차 희망을 발견한 신영복 선생 같은 분도 있습니다.

우리시대 최고의 수상록이라 할 수 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선생은 정년 퇴임사에서 ‘석과불식|碩果不食|’을 말했습니다. 씨 과실은 먹지 않고 후손을 위해 남겨둔다는 뜻입니다. 《주역》 산지박괘에 나오는 말입니다. 산지박괘는 《주역》의 가장 안 좋은 괘 중의 하나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칠판에 직접 감나무와 하나 남은 감을 그린 뒤, “앙상한 가지로 서 있는 나무는 비극의 표상이지만,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빨간 감 하나는 희망”이라며 “나무의 잎사귀가 떨어져 거름이 될 때 희망이 싹튼다”고 말했습니다. 《주역》에 담긴 고난의 괘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읽었던 것입니다.

50년 넘게 《주역》을 공부하고 강의하신 대산 김석진 선생은 그의 인생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점괘가 어떻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래를 알면 뭐해요 죽는 걸. 그렇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습니다. 점을 보고 나쁜 운명이라면 근신하고 대처해서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의 점괘를 자주 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의 점괘를 보면 나쁜 괘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됩니다. 나쁘게 나와도 좋게 해석하려 합니다. 결국 틀리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주역에서 올바른 예측을 하려면 주역 지식뿐만 아니라 수양이 필요한 겁니다. 결국 수양입니다.”

점술서로 출발한 《주역》이 지금의 점쟁이들에게는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곁에서 깊이 있는 삶을 위한 화두로 살아있습니다. 공자가 위편삼절|韋編三絶|하며 읽었던 것이 《주역》입니다. 바쁜 세상에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읽지는 못하더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정독하면 좋겠습니다. 《주역》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지혜입니다.

<주역> 연재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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