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다들 휴가는 다녀오셨는지요.
사람 많고 복잡한 곳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이번 휴가는 책과 함께 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도 평소에 읽기 힘든 ‘고전’ 몇 권 들고 느긋하게 그 뜻을 음미하며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이번 휴가를 <주역>과 함께 보내려고 합니다. 공자가 위편삼절하며 읽었다는 <주역>의 세계에 빠져볼랍니다.
독서노트는 지난 주에 이어 <장자>가 계속 이어집니다.
섭공|葉公|이 사신 자격으로 제나라에 갈 때 공자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습니다. 왕명을 받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제나라로 가야하는데 일이 잘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공자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공자의 조언입니다.
세상에는 지킬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명|命|이요, 다른 하나는 의|義|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명이므로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의로서 어디를 가나 임금이 없는 데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어디를 가도 이 두 가지를 피할 수 없는 것. 그러기에 이를 ‘크게 조심할 것|大戒|’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언제 어디서나 부모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孝|의 극치요, 신하는 언제 어디서나 임금을 편안하게 섬기는 것이 충|忠|의 완성입니다.
자기 마음을 섬길 때 슬픔과 기쁨이 눈앞에 엇갈리어 나타나게 하지 말고, 불가능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운명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덕|德|의 극치입니다.
신하나 자식된 사람이 부득이한 일을 당하면 사물의 실정에 맞게 행하면서,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할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세>
여기서 공자는 장자의 대변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장자는 분명히 인의|仁義|, 충효|忠孝|를 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의와 충효는 유가의 이념입니다. 유가와 장자를 대립되는 사상으로 보았던 많은 분들이 혼란함을 느끼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자의 생각을 앞에서 우린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조릉에서 장자가 깨달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장자는 스승의 말이라고 하면서 ‘다른 풍속에 들어가서는 그곳의 규칙을 따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어쩌면 매우 진부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은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낯선 곳에 가면 그곳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그곳의 규칙들도 비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회사를 옮기면 제일 힘든 것이 그곳의 조직 문화이고, 학교를 옮기면 가장 고민되는 것이 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따돌림 당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낯선 곳에 가면 본능적으로 그 전에 자신이 익숙했던 것에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옛날이 좋았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죠.
살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옮기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차례로 거쳐 직장도 여러 번 옮겨 다닙니다. 이사도 여러 번 하게 됩니다. 처음엔 낯선 사람이었겠지만 만나서 정이 들어 결혼도 합니다. 아기를 낳게 되어 부모가 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학부모가 됩니다. 어떤 이는 이민을 가기도 합니다. 인간으로 사는 동안 우리는 단 하루도 공동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장자는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 충효가 모두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념이 실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효를 말하고, 인의를 말하는데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공동체에서 살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심지어 죽을 수도 있겠죠. 그렇게 해서 그 공동체를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면 상황이 달라질까요? 어차피 사람 사는 곳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규칙입니다. 그런 규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임을 장자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자는 ‘불가능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운명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덕|德|의 극치’라고 말합니다. 장자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운명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안명론|安命論|이라고 합니다. 숙명론과는 다릅니다.
운명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인간의 타고난 운명만큼은 순수히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만 보더라도 장자의 발은 현실에서 결코 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일은 좀 가벼운 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