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04] 성인 동화 의 출연진들

장자 업데이트가 꽤 늦어졌습니다. 전체 내용을 거의 완성했음에도 매일같이 보내드리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제 게으름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매일매일 읽을거리를 실어나르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10여일 정도 걸리겠네요.
오늘은 <장자>에 등장하는 출연진들의 면면을 살펴봅니다. 내일부터는 <장자>로 ‘철학하기’를 시도합니다. <장자>를 그저 재미있는 우화책이 아니라, 일상과 상식을 뒤집어보는 수단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 시도가 얼마만큼 성공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큰 부담 없이 그저 재미로 읽고 정리하겠습니다. 읽으시다가 지루하면 버리고 휴지통에 넣으시고, 구미가 당기면 읽으시면 됩니다^^

공자 외에도 <장자>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도 있고 동물도 있고 나무도 있고. 사람 중에는 이미 성인으로 이름난 사람들도 있고 다리가 잘리고 등이 구부러진 이들도 있습니다. <장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겠습니다.

먼저 제1편 <소요유>에 북쪽 깊은 바닷속 물고기 ‘곤’, 엄청 큰 새 ‘붕’이 등장합니다. 이런 동물들 또는 신화적인 것들로는 매미, 새끼 비둘기, 원숭이, 꿩, 사마귀, 오리, 학, 황하의 신 ‘하백’, 북해의 신 ‘약’, 개구리, 거북이, 고고한 새 ‘원추’, 올빼미, 물고기, 바다새, 싸움 닭 등이 있습니다.

앞에서 다리 잘린 ‘숙산무지’ 이야기를 봤지요. <장자>에는 불구자를 비롯해 무언가 모자라고 부족하고 신분이 낮은 이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무지렁이들이 성인 군자들을 깨우치는 역할을 합니다. 숙산무지 외에도 다리 잘린 ‘왕태’와 ‘신도가’, 외발 장군 ‘우사’, 소 잡는 백정 ‘포정’, 호랑이 키우는 사람, 말을 사랑하는 사람, 목수, 꼽추 ‘지리소’, 미친 사람 ‘접여’, 못생긴 남자 ‘애태타’, 절름발이에다 꼽추, 언청이인 ‘인기지리무신’, 등 굽은 여인 ‘여우’, 술취한 사람, 이 빠진 ‘설결’이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사당의 쓸모없는 나무, 엄청나게 큰 나무도 등장하죠. 이 나무도 사람의 꿈속에 나타나 말을 합니다.
대개 이와 같은 불구자나 쓸모없는 나무 등이 좋은 역할을 맡고,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들 즉 공자나 안회, 요임금, 순임금, 혜자 등이 조금 모자라는 역할을 맡습니다. 심지어 장자의 선배격인 노자조차 조금 모자라는 인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혜자라는 이름이 좀 낯설죠? 혜자의 본명은 혜시|惠施|. 고대 중국의 논리학파의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장자>에서는 장자와 줄곧 말씨름을 하는 장자의 호적수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장자이니 당연히 말싸움에서 장자가 항상 이기곤 합니다. 마치 <맹자>에서 맹자와 고자의 논쟁에서 늘 맹자가 이겼듯이. 그러나 막상 혜자가 죽자 장자는 그 무덤을 찾아가 “나는 이제 함께 이야기할 상대가 없구나.”하고 슬퍼했다고 합니다. 장자와 혜자 이야기는 조금 후에 살펴보죠.

<장자>에는 이처럼 다양한 군상들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때로는 이솝 우화나 라퐁텐 우화를 보는 듯하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는 듯하고, 어떨 땐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팩션(faction)을 보는 듯합니다. <논어>와 <맹자>에 비하면 파격적인 형식입니다. <장자>의 이런 이야기 기법을 우언, 중언, 치언이라고 합니다.

우언|寓言|은 이솝 우화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남의 입을 빌려서 하는 거죠. 그것이 동물일 수도 식물일 수도 있고 때로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중언|重言|은 우언과 비슷하지만, 사람들이 익히 아는 위대한 사람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겁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공자와 요임금, 순임금입니다.
치언|卮言|은 임기응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부처가 설법할 때 상대의 처지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를 ‘방편’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장자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비유도 달리하고 말하는 수위도 달리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방편’이 <장자>에서 치언에 해당됩니다. 살아서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이 죽어서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떨어진다는 것도 방편이죠. 부처의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살아서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니까요. 치언의 치|卮|는 ‘술잔 치’입니다. 술잔이 가득차면 비우기 마련이죠. 비우고 나면 바닥도 일정하지 않구요. 술 못 마시는 사람에게는 조금만 따르고, 잘 마시는 사람에게는 많이 따르기도 하겠죠. 이렇게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면서 한 얘기라는 뜻에서 술잔에 비유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치언이라는 말조차도 비유네요.

장자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풀어가다 보니 한 번 읽어서는 어디까지가 자신의 말이고 어디까지가 남의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본심이고 무엇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쏭달쏭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장자>를 읽는 맛이요, <장자>를 다른 어떤 고전과도 비교할 수 없도록 탁월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남의 말을 빗대고 우화를 통해 비유와 은유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문학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장자>를 몇 번 읽다보면, 이런 장자의 표현 기법이 정말로 ‘장자답다’고 느껴집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그냥 알려주려 한 것이 아닙니다. 장자가 아는 지식을 그냥 전하려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일반 사람들이 가장 잘 알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언이요 중언이요 치언입니다. 그렇게 해서 장자는 <장자>를 읽는 사람들이 실제로 ‘변화’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보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 스스로가 거짓말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장자>는 성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합니다.

우화 얘기가 나왔으니 이솝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흔히 우화라고 하면 누구나 이솝을 최고로 꼽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노예로 태어나 수천 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를 남겼으니 당연하다고 봅니다. 이솝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마 노예였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전해오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보면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철학자 크산토스에게 “왜 정성스럽게 키우는 채소가 아무렇게나 두는 잡초보다 훨씬 못 자라는지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크산토스는 이솝의 주인이었습니다. 황당한 질문에 크산토스는 “신의 섭리가 아닌가”라며 슬쩍 넘어가려 했지요. 하지만 그의 노예였던 이솝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대지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잡초가 친자식이고 농부가 억지로 씨를 뿌리고 심는 채소는 의붓자식 아닌가요?”

이솝은 그야말로 언어의 연금술사였습니다. 그 언어는 결국 삶의 지혜와 철학으로부터 나온 것이겠지요. 그 지혜와 철학적 고민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우화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했기 때문에 이솝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그 인기가 그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저는 요즘도 가끔 이솝 이야기를 읽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촌철살인의 지혜에 감동하곤 합니다. 바로 우화의 힘이죠.

<장자>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읽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인을 위한 동화, 신화, 우화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뜻은 매우 심오합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심오한 존재론적 고민과 인식론적 사유가 담겨있습니다. <장자>를 철학적으로 더 파헤치다 보면,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를 그저 쉽게 하기 위해 우언을 썼던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은유나 비유가 아니면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은유와 비유에 가려진 그의 속내를 단 한 꺼풀이라도 벗기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번 <장자>편의 목표를 ‘<장자>로 철학하기’로 잡았습니다. 함께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그 결과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데 주로 참고한 서적

강신주,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태학사
오강남, <장자>, 현암사
이강수, <노자와 장자>, 길
모로하시 데쓰지, <장자이야기>, 사회평론
로버트 앨린슨, <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 그린비
양재혁, <장자와 모택동의 변증법>, 이론과 실천
허세욱, <장자>, 범우사
김갑수, <장자와 문명>, 논형
이현주, <이아무개의 장자 산책>, 삼인
신영복, <강의>, 돌베개 (전체 공통)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상>, 현음사 (전체 공통)
풍우란, <중국철학사>, 형설출판사 (전체 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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