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03] 고약한 장자

이제 비가 지겹습니다. 제발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습니다. TV 켜기가 무섭습니다. 흙탕물이 들이닥친 집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듭니다. 종교라도 있으면 어디 간절히 빌어보기라도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나마 이 비가 어서 그치기를 기원합니다.
험한 비가 와야 우리의 치부가 드러납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드느라 쏟아부은 돈이 원래 들어갔어야 할 곳이 드러납니다. 삶을 다 망쳐놓은 뒤에 요란하게 복구작업하지 말고, 미리미리 예방하는 데 아낌없이 써야할 것입니다. 연말에 남은 예산으로 괜한 도로 파헤치지 말고 큰 비 와도 문제 없도록 하는 데 써야할 것입니다. 매년 겪으니 어떤 데 써야할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아닙니까.


<장자> 연재는 아마 15회 정도 갈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중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고약한 장자

<장자>를 읽다보면 어디까지가 참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논어>나 <맹자>에서처럼 자신의 생각을 힘주어 강조하는 곳은 거의 없고 온통 남들 얘기밖에 없습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 주인공은 다름 아닌 공자입니다. 정확하게 세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다 출연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마 장자 생존 당시에 최대의 사상적 라이벌이 공자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장자가 공자보다 훨씬 후대 사람이니 공자의 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이었겠죠.

그런데 여기서 좀 이해 안 되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사기>에 보면 장자는 양나라 혜왕, 제나라 선왕과 동시대 인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두 왕의 이름이 낯익지 않나요? <맹자> 제1장에서, 먼 길 찾아온 맹자에게 인사치례로 “선생께서 천릿길을 멀다 않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져오셨겠지요?”라고 물었다가 “왜 하필 이익을 말하십니까?”라고 면박을 당했던 인물이 양나라 혜왕입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측은히 여겨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했던, 일명 ‘곡속장’의 주인공이 바로 제나라 선왕입니다. 그런데 <장자>에는 맹자에 대해 단 한 번의 언급도 없습니다. <맹자>에도 역시 장자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추측컨대 맹자가 장자보다 조금 전 시대에 살았고, 장자의 활동 범위가 지역적으로 좀 좁았던 것 같습니다.

<장자>에 등장하는 공자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개중에는 사실도 있겠지만 장자가 순전히 꾸민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꾸몄다고 하더라도 삼류 드라마처럼 무턱대고 허황된 이야기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공자의 생각과 행동으로 봤을 때 아마도 그럴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 이야기입니다. 공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자가 숭상했던 요임금과 순임금의 이야기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다들 그렇게 좋은 이미지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장자는 공자를 향해서 비판과 조소, 때때로 험담도 서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 하나만 하고 넘어가죠.

어느 날 다리가 잘린 사내가 공자를 찾아 왔습니다. 아마 형벌로 다리가 잘렸던 모양입니다. 예전에는 형벌이 잔혹했습니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도 허리를 부러뜨리는 형벌과 자신의 성기를 잘라내는 형벌 중에서 택해야 했었던 것 기억나시죠? 아무튼 이 사람 이름이 숙산무지|叔山無趾|였습니다. ‘무지’는 ‘없을 무’에 ‘다리 지’자입니다. 설마 진짜 이름이 저랬겠습니까. 그러니 이것 역시 장자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숙산무지에게 공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일찍이 조심하지 못하고 죄를 지어 이 꼴이 되었거늘, 이제 와서 나를 찾아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말을 듣고 무지가 한마디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 할 바를 모르고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 이처럼 발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발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온전히 지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무릇 하늘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땅은 모든 것을 떠받듭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그런 하늘과 땅과 같은 분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분인지 몰랐습니다.”
공자가 그제서야 자신의 말이 경솔했음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생각이 좁았네. 안으로 들어오게나. 내가 듣고 배운 바를 말해주겠네.”
그러나 무지는 그냥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아마 단단히 화가 났나 보죠.
이 일이 있고 난 후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힘써 배워라. 무지는 죄를 짓고 다리가 잘렸지만 더욱 자신을 갈고닦아서 지난날의 잘못을 갚으려 한다. 하물며 온전한 덕을 가진 너희들이랴.”

어떤가요? 천하의 성인인 공자가 죄를 짓고 발이 잘린 불구자한테 한수 배우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마저 들어볼까요.

무지는 공자의 집에서 나와 노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구|孔丘|는 지인|至人|의 경지에 이르려면 아직 까마득하게 멀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토록 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인은 이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노자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공자에게 삶과 죽음, 옳고 그름을 하나로 보라고 가르쳐주지 그랬느냐! 이 가르침으로 공자의 손과 발을 풀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지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벌입니다. 제가 어찌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결국 공자는 노자보다 훨씬 모자라며, 공자의 사람 됨됨이도 걸러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를 하늘이 내린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만 보자면 장자는 백발에 긴 흰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는 도사의 모습이 아니라 고약한 심보의 노인네 같아 보입니다. 천하의 공자와 요임금, 순임금 그리고 당대 최대의 논리학파 거장인 혜자|惠子|도 <장자>에서만큼은 조연일 뿐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보면, 신인|神人|은 손톱 밑의 때로도 요임금과 순임금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순을 낮잡아 말하는 거죠.
그런데 장자는 왜 이런 심술궂은 이야기를 만들었을까요? 그냥 자기 생각만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될 것을 왜 남들을 빗대어, 그것도 남들이 모두 우러러마지 않는 성인들을 한낱 코믹 엑스트라로 전락시켰을까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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