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단지기(平旦之氣)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단은 새벽입니다. 동이 틀 무렵입니다. 이른 새벽에 다른 사물과 접촉하기 전의 맑은 정신을 평단지기라고 합니다. 《맹자》 <告子 上>에 나오는 말입니다.
비가 오는 새벽입니다. 월드컵 16강 진출도 좌절되었으니 한때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라는 계시인 듯합니다.
지난 주는 제게 평단지기가 매우 탁했던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맹자는 말합니다. 밤의 기운(夜氣)이 보존되고 그로 인해 새벽녘의 기운(平旦之氣)이 보존될 때, 저절로 자신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그런데 낮 동안에 하는 행위가 그것을 곡망(梏亡)시키면 밤의 기운 또한 보존할 수 없고, 밤의 기운이 보존되지 않으면 금수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주희의 해석에 따르면, 낮 동안의 행위가 밤에 자라는 기운을 해쳐서 밤의 기운이 낮의 행위를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밤의 기운은 사그라들어 부족해지고, 새벽녘의 평단지기도 탁해지고 선을 좋아하는 인의(仁義)의 양심도 더 이상은 저절로 드러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가끔 회사 일이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야기(夜氣)와 평단지기(平旦之氣)를 잘 보존할 수 있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른 사물과 접촉하기 전의 맑은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서 어찌 낮 동안의 정성스런 행동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 그리고 다음 주 초까지 《맹자》를 연재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열독과 조언을 기대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주전론과 반전론입니다.
극우 논객 지만원이 얼마전 한국 월드컵 대표팀 유니폼이 북한 인공기를 변조한 것이고, 축구 협회의 호랑이 로고는 김일성 주석을 상징한다고 하더니, 내년에 빨갱이들이 대선과 총선을 싹쓸이하가 전에 빨리 전쟁이나 났으면 좋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런 말에도, 차라리 노무현보다 덜하다는 댓글이 달리는 현실에서, 과연 ‘전쟁’이 어떤 것인지,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의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왜 하필 이익을 말하십니까?
《맹자》를 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양혜왕> 편입니다. 이 글 초입에 잠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양혜왕과의 대화를 조금 더 보기로 하지요.
먼저 양혜왕이 맹자에게 묻는 말로 시작합니다.
“선생께서 천리길을 멀다 않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져오셨겠지요?”
맹자가 대답합니다.
“왕은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 다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왕께서 ‘어떻게 국가를 이롭게 할까?’라고 하시면 대부|大夫|들은 ‘어떻게 하면 식읍을 이롭게 할까’라고 생각하고, 사|士|나 일반 백성은 ‘어떻게 나 자신을 이롭게 할까?’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온 나라에 상하가 서로 이익을 다투게 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진실로 왕께서 의|義|를 뒤로 하고 이익을 앞세우신다면 모두가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직 인|仁|하면서도 자신의 어버이를 버리거나 의|義|하면서 자신의 군주를 홀시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실 따름이지 어찌 이익을 말하십니까?”
이렇게 해서 양혜왕과의 첫 번째 대화가 끝이 납니다.
앞서 당시 양나라, 즉 위나라의 처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전국칠웅이라고는 하지만 점점 입지가 좁아져서 위태롭게 느끼던 때였습니다. 양혜왕은 여러 학자와 전략가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위나라를 이롭게 할 것인지 묻습니다. 이때 맹자의 대답은 늘 그렇듯이 군주가 인의|仁義|를 먼저 생각하면 자연스레 백성들도 인의를 따라 나라가 강성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만 보면 맹자는 자신의 주장만 펼치며 질문한 왕의 의도를 전혀 모르는 독단적인 성격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내일 시험을 눈앞에 둔 학생에게 예상 문제는 가르쳐주지 않고 평소에 꾸준히 규칙적으로 공부하라는 원론적인 말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맹자는 정말 바보였을까요?
아직 답을 내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주전론과 반전론
춘추전국시대는 처참하고 지리한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잡아먹는 겸병전쟁의 과정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맹자》를 보면 곳곳에서 전쟁의 참혹상을 표현하는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양혜왕> 편에도 보이는데, 전국칠웅 중에서 꽤 힘이 강성했던 진|秦|이나 초|楚|나라를 표현하기를 “백성들에게서 농사지을 시기를 빼앗으니 그들은 농사를 지어서 부모들을 모실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부모들은 동상에 걸리거나 굶주리고 있으며, 형제들과 처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이들이 가진 재산은 위로 부모를 모시기에 부족하며 아래로는 아내와 자식들을 양육하기에도 부족하다. 풍년이 와도 일년 내내 고생스럽고 흉년이 들면 굶어 죽거나 고향을 떠나 유랑할 수밖에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루> 편을 보면 “영토를 쟁취하려고 전쟁을 하면 죽은 사람들이 들판에 가득하고, 도시를 쟁취하려고 전쟁을 하면 죽은 이들이 도성 안에 가득하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주된 관심사는 단연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크게 둘로 나누면 주전론과 반전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차피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전쟁 수행을 통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려했던 주전론 부류가 있었습니다. 법가와 병가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전쟁으로 인한 민생파탄, 파괴와 살상에 주목하여 전쟁과 군비 경쟁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반전론 부류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묵가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살상, 처참한 민생 파탄을 목격했던 맹자 역시 침략 전쟁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맹자가 보기에 이런 전쟁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군주들이 서로 전쟁을 포기하고 파탄된 민생 경제를 회복시켜주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맹자에게 양혜왕이 국가를 이롭게 할 방도를 물어왔던 것입니다. 양혜왕이 말한 ‘나라를 이롭게 하는 방도’는 결국 당시 모든 군주들의 목표였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를 이롭게 하는 방도를 일러 흔히들 국가공리주의|國家功利主義|라고 표현합니다. 공|功|은 힘쓸 공, 이|利|는 이로울 리. 즉 국가 차원에서 나라가 이롭게 되도록 힘쓰는 주의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맹자는 이런 사고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군주의 생각에는 실상 백성에 대한 고민이 쏙 빠져 있었습니다. 백성의 안위는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떻게 이들을 이용해서 다른 나라를 칠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백성은 전쟁놀이에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맹자는 바로 이 점을 간파한 것입니다. 입으로는 국가의 이익을 말하지만, 거기에 백성의 고달픔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는 것을 본 것이죠. 맹자가 “왜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되물었던 것은, 이런 식으로 해서는 결코 천하가 안정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맹자가 생각하기에 천하를 통일하는 방법은 오로지 도덕적인 왕이 출현하여 의로운 전쟁|義戰|을 통해 민생 파탄의 일삼는 모든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시대, 특히 천하 통일을 앞두고 먹느냐 먹히느냐의 문제가 절박한 상황에서 맹자의 이러한 주장은 요원하게만 들렸을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런 주장은 분명 이상적이며 비현실적입니다. 그러나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맹자의 이상을 휴지 버리듯이 폐기처분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맹자는 당시의 지극히 암울한 사회적 혼란에서 벗어난 민본주의적인 공동체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 꿈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상 언제나 유효한 것입니다.
전쟁은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납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의 모습만 바뀌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동기는 비슷합니다. 전쟁이 나면 개인은 처참해집니다. 전쟁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실의 모습은 전쟁을 조장하고 방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오직 부국강병만이 목적인 것은 춘추전국시대를 꼭 빼닮았습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지식인들이 전쟁을 반대하며 꿈꾸었던 이상과 용기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춘추전국시대와 오늘날을 비교하다보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내일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