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

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1월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날, 기분 좋은 영철 street 버거의 희망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짧은 연휴 탓에 고향 다녀 오는 길이 바빴습니다. 서울을 출발하여 대구-안동-대구-서울-인천을 거쳐 다시 집으로 오는 3일 간의 여정은 그저 먹고 자고 타고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래도 KTX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로 인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다녀왔습니다.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주제로 보는 한국사 – 조선편》을 봤는데, 그만 열차 안에 두고 내렸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심심할 것 같아 역내 편의점에서 새 책을 샀습니다.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라는 영철 스트리트 버거의 이영철 사장 이야기입니다.


   제   목 :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
   지은이 : 이영철
   펴낸곳 : 해냄 (초판 출간일 2005.11.7) 초판 1쇄를 읽음 ₩9,000


대구에서 서울까지 KTX로 한 시간 40분 걸립니다.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너무 빨리(?) 올라오는 바람에 다 읽지 못하고, 처가에 들러 다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마저 읽었습니다. 한 번 잡으면 다 읽기까지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군데군데 눈물을 글썽거리며, 때로는 옆의 사람이 볼까봐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읽었습니다.

글이 명문(名文)이거나 특이할 만한 성공 노하우가 담겨있지는 않습니다. 글이 비록 거칠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특이할 만한 성공 노하우는 없지만 그의 땀과 열정과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만은 충분히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영철 사장의 학력은 초등 4학년 중퇴. 오로지 건강한 몸뚱이 하나만 믿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고, 공사 현장에서 그나마 차근차근 꿈을 키우며 일을 하다가 사고로 허리를 다치면서 한때의 절망이 시작됩니다. 병원비와 노름으로 빚만 키워가며, 결국은 처가의 반지하 방에 더부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 때 통장에는 단돈 2만 2천원. 인간 이영철의 성공 스토리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장면은 갑자기 바뀌어 2004년 10월 26일, 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제41회 저축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포장’을 수상합니다. 수중에 단돈 2만 2천원, 그리고 신용불량자 신세에서 국민포장을 받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2만 2천원이 든 통장을 보여주며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여 동서에게서 50만원을 빌립니다. 그 돈으로 낡은 포장마차를 구해 용두동에서 떡볶이 장사를 합니다. 그러다가 오뎅, 순대까지 팝니다. 장소를 바꿔 면목동에서 계란빵과 햄버거를 팝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새로운 아이템을 조언해줍니다. 외국에서는 핫도그 빵에 양배추와 고기를 볶아 끼워 파는데, 그것이 맛있더라는 얘기. 그로부터 약 두달간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버거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그래서 이문동 외대앞 먹자골목 입구에서 처음 영철 버거를 팔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때는 그냥 포장마차 버거였습니다. 3일째 되는 날, 하루 약 100개를 팔면서부터 그는 성공을 감지했다고 합니다.
그 사이 단골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인근 시립대에 다니는 여학생이 와서 ‘영철 street 버거’라는 이름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외대앞에서 장사를 하다가 주변 상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이기지 못해 이문동을 떠납니다.

외대 앞을 떠나서 그는 과일 장사를 하면서 더 좋은 장소를 물색합니다. 그러다가 2000년 초, 안암동 로터리, 지금의 해정집이라는 식당 앞에 자리를 잡습니다. 몇 번을 더 옮기어 지금의 자리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특별한 성공 노하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 노하우를 뽑아내자면 이렇습니다.
1.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의지와 어디든지 정착할 수 있다는 뻔뻔함
2. 일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성실함.
3. 단돈 천원이지만 자신의 음식을 팔아주는 손님에 대한 절절한 애정, 그리고 고마움.

물론 몇 번의 외부 요인도 있었습니다.
1. 2002년 월드컵. 노점을 허락해 준 가게 주인이 경기를 이길 때마다 “영철 버거 100개 공짜” “200개 공짜” “300개 공짜”라고 하는 덕분에 학생들이 몰렸음.
2. 2002년 경향신문 문화면에 크게 기사가 난 것. 뒤이어 《VJ 특공대》와 여러 TV, 신문에 자주 등장했음. 이것이 거의 결정적 역할을 함.
3. 고대에 장학금을 기증하고 학보사 신문에 나고, 총장이 들르고… 어느 새 고대의 명물로 자리잡게 됨.

고대에 매년 2천만원씩 장학금을 기증한 것도, 그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기증할 때 그는 여전히 반지하 방에서 처가살이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신을 도와준 학생들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자신처럼 돈이 없어 학업을 잇지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주고자 사심없이 시작했습니다. 이 마음, 자신의 음식을 사서 먹는 학생들에 대해 한없이 고마워하는 이 마음이 다른 어떤 요인보다 현재의 그를 만든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책에는, 처음 고대 앞에서 장사를 하면서 ‘명문대’ 학생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초등 중퇴자인 그가 보기에는 그러했을 것입니다. 처음엔 그 장면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런 그의 그 마음이 분명 현재의 그를 있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손님에 대한 애정과 존경, 그리고 음식에 대한 정직함, 그것이 바로 ‘인간 이영철’이 성공한 까닭입니다.

그럼 그가 어느만큼 성공했을까요? 계산해봅시다.
하루 1,500개 정도 판다고 합니다. 가격은 1,000원. 그러나 고기는 돼기고기 등심을 쓰고 신선한 양배추에 청양고추를 등뿍, 콜라까지 공짜이니 이래저래 원가가 700원 가량 된답니다. 남는 돈은 300원 정도. 1,500개를 팔면 하루 약 45만원 정도 남습니다. 직원 서넛에 가게 임대료까지 제하면 ‘사업’으로서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모델입니다. (한번은 하도 많은 사람들이 가맹점을 내어달라고 조르는 통에 일일이 시간을 내어 설명할 수가 없어 ‘설명회’를 했답니다. 위와 같은 원가-마진 이야기와 일하는 방법 등에 대해 얘길 했더니, 설명회가 끝나고 나서 아무도 찾지 않더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늘 기분이 좋습니다. 통장에 현금 100만원만 있어봤으면 하는 아내의 작은 소원을 이루었고, 전세집만 얻어주면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아내의 큰 소원(?)을 또한 이루었으니 그는 늘 행복 충전 100% 상태입니다. 행복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 저 역시 그 행복에 전염되었습니다.

그의 성공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와 가맹점을 내어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그는 말합니다.

“하루에 15시간 웃으면서 일할 자신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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