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보는 한국사 – 고대편

최근 출간된 <주제로 보는 한국사 - 고대편>을 읽었습니다.
역사서를 읽는 이유를 재삼 거론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역사적 지식과 식견이 아직 많이 부족한 저에게는 끊임없이 읽고 또 읽어야 할 분야입니다.


   제   목 : 주제로 보는 한국사
   지은이 : 이희근
   펴낸곳 : 고즈윈 (초판 출간일 2005.12.15) / 초판 1쇄를 읽음 ₩15,000


저는 어떤 경우에서든 지나친 경도나 우상화를 경계합니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친 민족주의적 사관에 입각한 민족 또는 국가 우월주의적 사관을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또 다른 편향을 낳을 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자가 역사적 사실을 논증하고 해석하는 관점이 저의 눈길을 끕니다. 저자는 동아시아 역사 전쟁을 다룬 7장에서 “현재의 민족적인 입장이 과거 사실 판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힘의 우위에 의한 역사적 해석 앞에서 오히려 냉정하게 그 사실의 증명과 추론의 과학성으로 그릇된 해석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순수’한 학문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중에서 당파적이니 않은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쩌면 그러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냉정해야 합니다. 타인을 설득하여 인정받는 것이 아닌, 자국민의 믿음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으니까요.

과거의 기자동래설, 임나일본부설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행동은 애국주의적 호소나 현란한 사변이 아니라 지극히 냉정하고 철저한 역사 고증 작업일 것입니다.
국내 학자들 간의 견해차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보듯이 한국 고대의 실체는 논란 또는 논쟁 속에 있습니다. 이 책은 고대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학계 연구 성과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 지식을 스스로 정리하며 익히기 위해,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핵심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1. 한민족은 과연 단군의 자손인가?

    한국인과 몽골인은 인종적으로 동일하다는 통념과는 달리 한국인의 대부분은 남방의 농경문화민족에서, 일부는 북방의 유목 기마민족에서 비롯됐다. 즉 한국인 10명 가운데 7,8명이 중국 중북부 및 동남아시아의 남방계적 유전 특징이 있고, 나머지 두 세명만이 몽골 시베리아 북방계의 유전적 특징을 지녔다. 북방계 단일민족이라 볼 수 없다.
    단군이 한민족의 시조라는 인식은 고조선 멸망 이후 무려 1천 5백 년이 지난 고려 후기에 편찬된 기록에 처음 나타난다. 13세기 이전에 단군신화는 한민족 전체가 아닌 평양 일대에 전해져온 한 지역의 전승설화에 불과하다.
    단군의 한민족 시조화의 모태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자동래설’에 있다. <삼국사기>나 <제왕운기>가 편찬되기 전에는 현재의 통념과는 달리 단군이 아닌 기자(箕子)를 한민족의 시조로 인식하고 있었다. 고려의 지식인들은 조작된 기자동래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국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기자가 조선을 문명국가로 만든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며, 원과의 종속관계를 정상적인 사대관계로 만들고자 하는 역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자는 단군으로부터 그 왕위를 선양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단군은 조선에 와서 국조로 승격되었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민족주의적 사상에 의해 단군은 한민족의 국존임은 물론이고 한민족 통합의 상징이 되었다.

  2. 실체가 없는 고조선상

    조선 왕조를 제외한 역대 왕조들은 자신의 나라가 고조선에서 비롯했다는 계승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고구려와 신라 왕실에는 그 기원을 하늘에서 찾아 천손임을 자처하는 독자적인 건국신화가 있었고 백제 왕실도 부여와 고구려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
    고려 중기까지는 한국사의 시작이 기자조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조선’이라는 국명도 고조선이 아닌 ‘기자조선’의 계승자라는 의미였다.
    일제 강점기에 중국인인 기자는 아예 무시되고 단군이 국조임은 물론 민족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고조선 건국 연대를 서기전 2333년(중국 요임금 재위 기간 중)으로 알고 있으나, 요임금은 전설적인 인물로 중국학계에서조차 그 즉위해를 절대연도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농업경제와 청동기 문화가 성숙해야 하는데, 한반도와 남만주지역에서 국가가 형성된 시기는 대략 서기전 10세기 전후이다.

    고조선은 서기전 4세기 후반에 전국 7국 가운데 한 나라인 연나라와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 동북지방의 유력 세력이었다. 그러나 서기전 3세기경 연의 침입으로 위축되고 서기전 194년 연나라 출신 위만에게 멸망한다. 그 후 고조선 유민 상당수가 한반도로 이주했는데, 일부는 평양에 정착하고 일부는 경주 일대에 자리를 잡아 신라의모태가 된 사로국을 형성했다. 이중 평양의 유민은 단군에 대한 전승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단군신화이다.

  3. 고조선의 중심은 요동인가, 평양인가

    고조선의 중심이 어디냐는 논쟁은, 한사군의 중심군현인 낙랑군의 위치만 확인하면 종결된다. 단, 낙랑군과 낙랑국은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다. 낙랑국은 고구려 남쪽과 신라 북쪽에 있었다. 낙랑국과 낙랑군을 혼동하여 낙랑군의 위치를 대동강 유역이라고 보는 그릇된 견해가 통설이 된 것이다.
    한사군은 한반도 내가 아닌 만주 지역에 설치되었다가 다른 세 군은 사라지고, 발해만 서북부 지역에 있던 낙랑군은 서기 313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당했다.

  4. 세 개의 신라 시조 전승, 3성씨 왕위 교대설의 실체

    신라의 시조전승은 건국시조인 혁거세 외에도 석씨 시조인 탈해, 김씨 시조인 알지 전승이 함께 전해진다. 이처럼 세 가지 시조설화가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에서는 왕위를 박-석-김 세 성씨가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왕위 계승과정의 권력 암투를 미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나, 성씨 개념은 유교적인 관념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실상은 거의 동일한 혈족집단에서 왕위가 이어졌던 것이다. 즉 신라는 혁거세를 단일 시조로 한 광범위한 공동혈적의식을 가진 집단 내에서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다.

  5. 주몽의 과연 하늘의 아들인가

    <삼국사기>,<삼국유사>, 중국의 <위서> 등 여러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고구려는 천제와 하백의 신성한 혈통을 이어받은 주몽이 졸본지역에 건국했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또한 주몽이 하늘의 아들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몽은 원래 졸본 지역에서 이주한 계루부의 수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연맹체의 맹주 자리를 놓고 또 다른 집단이 소노부와 겨뤄 이김으로써 맹주가 되었다. 그러나 맹주라하더라도 그 왕권이 매우 취약했다. 고구려왕들이 주몽을 천자로 한 건국신화를 만든 것은 취약한 왕권을 신성화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여타 고구려 구성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고안해낸 이데올로기 장치에 불과하다.

  6. 백제의 건국시조는 온조인가 비류인가

    <삼국사기>에 의하면, 주몽은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이고 둘째 아들은 온조이다. 그런데 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아들 유리가 와서 태자가 되는 바람에 이 둘은 남하하여 각각 나라를 세운다.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했는데, 후에 비류가 죽자 온조는 그의 신화와 백성들을 모두 귀속시켰다.  
    ‘시조형제신화’는 두 세력이 연맹을 형성했을 경우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온조와 비류가 실제 혈연관계에 있었다기보다는 위례성의 온조세력과 미추홀의 비류세력이 연맹관계를 맺게 되자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 결국 백제의 건국세력은 한 집단이 아닌 여러 집단이었음을 의미한다. 온조계와 비류계가 그 성장 과정에서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을 거듭하면서 상당기간 비등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7. 신화 속의 인물, 김수로왕의 실체

    <삼국유사>에 의하면 알 여섯이 모두 사내아이가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특출하여 이름을 수로라 하고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가 바로 여섯 가야 중 대가야국의 왕인 김수로왕이라는 것이다.
    건국신화는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전기 가야 연맹(6국이 아닌 실제는 12국)의 맹주가 수로왕의 가락국이었다는 것말은 사실이다. 후에 지속적으로 신성화 작업을 통해 이러한 신화가 만들어졌다.

  8. 발해의 시조 대조영은 말갈인인가, 고구려인인가

    대체로 남북한 학자들은 대조영이 고구려 출신임을 밝히려고 하고 중국은 그가 말갈인임을 입증하려 한다. 그러나 대조영은 말갈계 고구려인, 즉 고구려로 귀화한 말갈인이었다. 실제 대조영은 고구려의 장수였다.
    <구당서>에, 대조영은 ‘고구려 별종’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신당서>에서는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붙은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순수 말갈족도, 순수 고구려인도 아니라는 말이다.
    발해의 원래 명칭은 진국이었다. 진국의 창건자는 대조영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걸걸중상이었으나, 그가 죽자 아들인 대조영이 뒤를 이었고, 측천무후를 피해 동모산으로 이동하여 나라를 크게 일으켰기 때문에 대조영이 건국자로 부각된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많이 걸리네요. 1권은 모두 7장 28개의 주제인데, 겨우 8개밖에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월요일은 좀 일찍 출근하는 편이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사이트에 다른 코너를 만들어 시간이 되는 대로 마저 기록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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