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회사에서 워크샵을 다녀왔습니다. 힘겨운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야외에서 바람을 쐬고 오니 마음이 한결 상쾌합니다. 덕분에 책은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완독한 것이라고는 오래 전에 사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밖에.
제 목 : 군주론
지은이 : 니콜로 마키아벨리 / 강정인, 문지영 옮김
펴낸곳 : 까치 (초판 출간일 1994.2.25) / 2005.4.15일刊 2판 7쇄를 읽음 ₩8,000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였을까요, 아니면 군주주의자였을까요?
군주인 메디치 가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올리는 헌정사로 시작하는 《군주론》을 보면, 누가 보더라도 그는 철저한 군주주의자입니다. 책은 온통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후대에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자’라는 오명까지 덮어쓰게 됩니다. 이른바 마키아벨리스트,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와 함께.
목적을 위해서는 악덕도 선이며, 따라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명언(?)들을 《군주론》에서 뽑아봤습니다.
-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 (p.19)
- 당신이 해를 입힌 자를 신뢰하지 말라. (…) 새로운 은혜를 베품으로써 과거의 피해를 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 기만에 빠지는 것이다. (p.57~58)
- 가해행위는 모두 한꺼번에 저질러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적게 야기한다. 반면에 시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p.66)
- 전쟁은 군주의 직업이다. (p.102)
-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이다. (p.115)
- 술책이 진실을 이긴다. (p.122)
그러나 《군주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는다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지극히 상식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고대 역사를 빗대어 장황하게 군주가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결코 넘어서지는 않습니다. 김욱이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에서 지적했듯이, 마키아벨리는 결코 ‘빈대를 잡기 위한 좋은 목적이라면 초가삼간을 태우는 나쁜 수단도 정당화된다’고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좋음과 나쁨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나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의 목적은, 누구나 거스를 수 없을 정도의 ‘좋은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국가 유지를 최선의 목적으로 상정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인민의 지지를 받는 국가가 최선의 국가라고 주장을 하더라도, 국가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위정자들은 마키아벨리를 최고의 변호사로 위임할 것이며, 그의 책 《군주론》은 복음서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몇몇 줄만 의도적으로 삭제한다면 말입니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삭제할 만한 말들을 골라봤습니다.
- 사악함만으로는 진정한 영광을 얻을 수 없다. (p.61)
- 강력하고 현명한 군주는 인민에 의지할 수 있다. (…) 인민들을 토대로 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인민들을 부리는 법을 알며, 용맹이 뛰어나서 역경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으며 그의 기백과 정책에 의해서 인민들의 사기를 유지할 수 있는 군주라면 인민들에게 배반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p.71~72)
- 인민의 호감이 음모에 대한 안전책이다. (…) 음모자는 통상 범죄를 수행하기 전에 두려워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에 못지 않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목표했던 일을 끝낸 후에도 인민들이 적대적일 수 있으며, 나아가 그런 인민들로부터는 어떠한 도피처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p.129~130)
- 군주에게 최선의 요새는 그의 신민들이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더라도 인민이 당신을 미워하면, 요새가 당신을 구출하지 못할 것이다. (p.151)
《군주론》은 읽는 이에 달리 읽힙니다. 권모술수의 참고서로도 변혁의 이론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끊임없이 현실 정치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군주에게 아첨을 해서라도 정치권에 몸을 담고자 했던 비열한 노(老)정치가로 비칠 수도, 이탈리아의 변혁과 통일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정치 매뉴얼을 만들고자 했던 고뇌하는 노(老)사상가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알뛰세르가 지적했듯이 마키아벨리가 공화주의자였는지 군주주의자였는지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마키아벨리는 어떤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그의 사후에 새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엉뚱하게도 《군주론》을 읽으면서 노자의 다음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왜 그랬을까요,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엉뚱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