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의 죽음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순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맹자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본래부터 선하다고 한 반면, 순자는 그것을 증명할 수 없는 주장일 뿐, 인위 – 즉 교육과 예의가 없이는 선해질 수 없다고 설파한다.
흔히 맹자는 성선설을,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여 서로 대립되는 사상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책을 보니 반드시 그러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맹자가 말하는 성(性)과 순자가 말하는 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서로 다르게 정의한 개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니, 이를 두고 대립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비교할 때 동물(짐승)과 비교한다. 짐승에 비할 때 인간에게는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이다. 반면 순자는 인간을 그 자체로 ‘사회적인 인간’으로 해석한다.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본능과 욕망을 어느 정도 배제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인위적인 교육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맹자나 순자 모두 지향하는 바는 왕도(王道)다. 내가 보기에는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제 목 : 순자
시리즈 : 책세상 문고 – 고전의 세계 16
지은이 : 순자 / 장형근 옮김
펴낸곳 : 책세상 (초판 출간일 2002.7.30 | 초판 1쇄를 읽음) ₩5,900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난다. 순자는 한마디로 현실주의자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간의 ‘예’가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계층이나 계급은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신분이 평등하다면 [원하는 수요 공급을] 두루 충족시킬 수 없다. 대중이 모두 동등하다면 [누가 누구를] 부릴 수 없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듯이 위와 아래는 차등이 있다.(王制편)”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그러나 또 한편으로 순자는 여전히 이상주의자에 불과하다. 그가 말하는 ‘예’라는 것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본성도 아니고 ‘법’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되는 개념 같다. 책 전체에 수없이 반복되는 ‘예’라는 글자를 ‘법’으로 바꿔도 문맥은 거의 통한다. 그의 제자 한비자가 ‘법가’의 대표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마 내가 순자의 제자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순자로부터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맹자를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매우 논리적이며 감동적이다. 물론 모든 주장을 다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은 초지일관 매우 정연하며 현실적이며 논리적이며, 문장 또한 매우 맛깔스러워 읽는 이에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주지시키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책 전반적으로 다시 음미해볼만한 구절들이 많지만, 특히 권학(勸學)편은 평생 공부를 하며 두고두고 봐야할 명문들이다.
익히 다 아는 문장들이지만 다시 한번 옮겨본다.
군자는 공부는 멈추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푸른색은 쪽에서 얻어지나 쪽빛보다 푸르며,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나 물보다 차갑다. 나무가 곧아 먹줄에 반듯하게 맞았으나 불로 굽혀서 바퀴를 만들면 그 굽은 것이 그림쇠처럼 되어 아무리 말리고 햇빛에 쪼이더라도 다시 반듯해지지 않는데, 이는 [본질 때문이아니라 외부의 힘인] 불로 굽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간,월,이,맥 땅의 아이들은 갓 태어나선 같은 소리를 내지만 자라면서 전혀 다른 습속을 지니게 되는데, 이는 [본질 때문이 아니라 외부 환경의] 가르침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레와 말을 빌려 타면 발이 빠르지 않더라도 천 리를 가고, 배와 노를 빌려 쓰면 물에 능하지 않더라도 강을 건넌다. 군자는 나면서 [다른 사람과] 다를 것이 없지만 바깥 사물을 잘 빌려 쓴다.
남녘에 이름이 ‘몽구’라고 하는 새가 있어 깃털로 둥지를 만들고 그것을 머리털로 잘 감아서 마른 갈대 끝에 걸어두는데, 바람이 불어 갈대가 부러지면 새알은 깨지고 새끼는 떨어져 죽는다. 둥지가 완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매단 곳이 그렇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의 정성스런 뜻이 없는 사람에게는 빛나는 총명함이 없고, 오직 하나의 정성스런 노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혁혁한 공이 없다.
갈림길에서 배회하는 사람은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두 군주를 섬기는 사람은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눈은 [동시에] 두 가지를 보지 않을 때 밝으며, 귀는 [동시에] 두 가지를 듣지 않을 때 밝다.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주는 것을 조급하다고 하고, 하나를 물었는데 둘을 대답하는 것을 수다스럽다고 한다. 조급함도 잘못이고 수다스러움도 잘못이다. 군자는 소리 그대로 [많으면 많게 적으면 적게] 울릴 따름이다.
공부란 원래 하나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전심전력을 다한 뒤에라야 진정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천론(天論)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최고의 기교는 [할 수 없고 해서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 데 있고, 최고의 지혜는 [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에 열중할 뿐 하늘에 있는 것을 흠모하지 않으나, 소인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등지고 하늘에 있는 것을 흠모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에 열중하고 하늘에 있는 것을 흠모하지 않으므로 날마다 진보하지만, 소인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등지고 하늘에 있는 것을 흠모하므로 날마다 퇴보한다.
기우제를 지낸 뒤에 비가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가로되, 무엇 때문이 아니라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오는 것과 같다.(…) 군자는 이것을 [정치적] 수식이라 생각하지만 백성들은 신령스러운 것으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