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체성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한 개인의 생명이다.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들려오는 이야기를 애써 무시하기 위해 귀를 닫고 눈을 감지만, 김선일씨의 죽음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는 더 이상 변명하지 말라.

탁석산의 《한국의 주체성》을 읽었다. 2000년에 씌어진 글인데 이런 말이 나온다.

“일본이 독도가 자국 땅이라고 주장해도 정부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면서 일본 눈치를 본다. 우리의 영토 문제인데도 꼬리를 내린다. 또 중동에서 우리 국민이 인질로 잡히거나 실종되어도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듯 반응한다. 이런 정부가 주권을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p.51~52)”

이번 김선일씨의 경우를 빗대어 보아도 위 지적은 정확하다.
이 책은 《한국의 정체성》 후속편이다. 저자는, 정체성의 판단 기준으로 ‘현재성’과 ‘대중성’ 그리고 ‘주체성’을 들고 있는데, 이 책은 ‘주체성’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제   목 : 한국의 주체성
   시리즈 : 책세상 문고 – 우리시대 6
   지은이 : 탁석산
   펴낸곳 : 책세상 (초판 출간일 2000.6.25 | 초판 15쇄를 읽음) ₩3,900


  1.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5가지가 있는데,
    자력갱생의 길,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 현지 고용인으로 전락, 강대국의 길, 약소국이면서 주체적인 국가 등이다. 이 중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현실적으로 강대국이 될 수 없는만큼 약소국이면서 주체적인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 그렇다면 주체적인 삶의 핵심인 ‘주체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세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은 자신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 한다.
    둘째, 서로의 입장이 바뀔 수 있으므로 주인은 손님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셋째, 주인의 자신의 독립과 자존감을 위협받을 때 이를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

  3. 그렇다면 주체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저자는 내면적인 – 머릿속의 – 주체성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핵 주권이다. 즉 핵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 매우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나,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다. 약소국이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보다 더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비핵화와 세계 평화는 강대국, 특히 미국의 논리라는 것이다.

  4. 한편 주체적으로 사는 방법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첫째는 한글 전용이다. 한국어 표기 유형의 난립은 결국 고뇌의 부족과 정체성의 혼란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국한문 국영문 병기 또는 혼용체가 아닌 한글 전용 표기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다소 억지 같고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나 이 글을 읽어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둘째는 국가 기반 시설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즉 공기업의 민영화는 결국 미국의 잇속만 챙기는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타당한 주장이다.
    셋째로, 강대국에 대해 할 말은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이 이제 와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환경에 대해 규제하려면 중국과 같은 기준으로 해 달라고 요구하라는 것이다.

이 책은 논란의 여지가 되는 주장들이 많다. 핵무장, 한글 전용, 국가 기반시설 보호, 공기업 민영화 반대, 환경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론 등. 어찌 보면 국수주의, 반평화주의, 반환경주의자 같은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귀담아 듣다 보면 그의 주장에 대부분 공감하게 된다(내가 그러했다는 것이지 결코 강요는 아니다).
가장 논란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핵무장과 한글 전용이다. 그의 주장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직접 보시길 권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읽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다. 좋은 책 많이 만드는 출판사를 돕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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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 책의 장르는 ‘철학’이다. 탁석산은 현실에 복무하는 철학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한글 전용과 관련해서는 철학적 논증이 뒤따른다. 동음이의어로 인해 국한문 혼용을 해야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철학적 반증 논리는 매우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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