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제   목 :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부   제 : 젊은 물리학자의 과학적 세상 읽기
지은이 : 정재승
출판사 : 동아시아 (초판 출간일 2001.7)


신선한 충격 – 글쓰기의 모범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선배의 권유로,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하면서 사봤습니다.
허름한 책 표지와는 달리 근자에 읽어본 것 중에서 가장 많은 지식과 깨달음을 함께 준 책입니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부제인 “젊은 물리학자의 과학적 세상 읽기”라는 문장이 없다면, 제목만 봐서는 쉽게 장르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첫번째 장만 읽어보아도(전체 20장으로 구성) 이 책의 진가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정말 박학다식한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박학다식으로만 끝날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사람’의 생각은 정작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 많은 지식들이 호기심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하지만, 많이 안다는 것 자체가 삶의 지혜로까지 발전하고는 볼 수 없습니다.

정재승의 이 책에서는 지식의 승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이 저자의 지식을 통해 풀이되고 있습니다. 풀어내는 도구는 다름 아닌 물리학입니다. 물리학자의 깜짝 놀랄만한 해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물론 저자가 보기에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들을 조합한 것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무릇 범인들의 눈에는 복잡한 수식을 명쾌하게 해설하는 명강사처럼 느껴집니다.)

첫번째 장, 케빈 베이컨 게임에서는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다’라는 말을 증명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생각보다 매우 작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케빈 베이컨은 미국의 영화 배우로 20여년 동안 5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케빈 베이컨 게임이란, 케빈 베이컨과 함께 영화에 출연한 관계를 1단계라고 할 때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이 케빈 베이컨과 몇 단계만에 연결될 수 있는가를 찾는 게임입니다. 결론은 모든 배우들이 여섯 단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던컨 와츠라는 코넬 대학의 교수가 증명하였습니다. 이 때 사용된 개념이 ‘작은 세상 네트워크’인데, 설명하자니 길어질 것 같네요. 여하튼 이 교수가 실제로 헐리우드의 모든 배우들을 데이터베이스에 넣고 프로그램을 돌려봤더니, 모든 배우들은 평균 3.65단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비슷한 예로, 수학자 에르되스로부터 비롯된 ‘에르되스 수’라는 것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상에서 하나의 웹 페이지에서 임의의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는 데 평균 19번의 클릭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장(머피의 법칙)에서는 ‘머피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면서, 이는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한가를 말해주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세상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무리하게 요구했는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3장(어리석은 통계학)에서는 O.J 심슨 사건을 통해 통계학에 대한 몰이해를 꼬집고 있습니다.

4장(웃음의 사회학)에서는 토크쇼의 방청객들은 왜 모두 여자인지를 ‘웃음은 전염된다’는 가설과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5장(아인슈타인의 뇌)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뇌를 15%밖에 못 쓰고 죽었다는 말을 통해 근거 없는 과학 상식을 말하고 있고,

6장(잭슨 폴록)에서는, 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을 통해 ‘카오스 시스템’과 ‘프랙탈’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7장(아프리카 문화)에서는 6장에서 이미 소개한 ‘프랙탈’ 개념을 아프리카 문화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8장(프랙탈 음악)에서는, 히트한 음악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는데 그것 역시 ‘프랙탈’과 ‘1/f 음악’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9장(지프의 법칙)에서는,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의 빈도수와 흔히 80/20 법칙이라고 불리우는 ‘파레토의 법칙’을 통해 불평등과 불균등이 자연 법칙에 가까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이 부분에서 저자는 불평등을 애통해합니다.)

10장(심장의 생리학)에서는, 정상인의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인데 반해 환자의 심장 박동이 오히려 규칙적이라는 사실을 통해, 결국 생명체는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수행하는 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불규칙적이지만 유연하고 역동적인 상태를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1장(자본주의 심리학)에서는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구조에 녹아있는 상술, 파코 언더힐의 표현대로라면 ‘쇼핑의 과학’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12장(복잡성의 경제학)에서는 주류 경제학에 도전하는 물리학자들의 얘기를,

13장(금융공학)에서는 주식 시장에 뛰어든 NASA의 로켓 물리학자의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14장(교통의 물리학)에서는, 멕시코의 버스는 왜 몰려다니지 않는지, 그리고 복잡한 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왜 항상 옆 차선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지를 설명하며, 물리학자들이 나서서 교통 체증을 해결해주길 바라면서 글을 맺고 있습니다.

15장(브라질 땅콩 효과)에서는, 모래시계와 브라질 땅콩 등을 통해 ‘멈춤각’ ‘고비상태’ 등의 과학적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장(소음의 심리학)에서는, 현대 음식점의 소음이 심각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려주고,

17장(소음 공명)에서는, 그러나 소음이 있어야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역치(threshold)’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18장(사이보그 공학)에서는 형사 가제트의 예를 통해 뇌파의 과학을,

19장(크리스마스의 물리학)에서는 산타클로스가 지구를 하루만에 돌기는 불가능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20장(박수의 물리학)에서는 반딧불이가 제각각 반짝이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일제히 같은 박자로 반짝거리는 이유를 ‘진동자’와 ‘동기화’라는 개념과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마치 네이버의 지식인, 엠파스의 지식 거래소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지식들의 단순합인 지식 검색과는 달리 이 책은,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여 유의미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저자의 통찰력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어떤 사람은 지식 그 자체를, 어떤 사람은 박학다식한 저자에 대한 존경을, 그리고 저같은 사람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게 됩니다.
이 책은, 전문 지식을 어떻게 가공해야 진정으로 남들에게 유의미한 지식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모범 답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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