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구약 성서를 읽으면서 “이보다 더 황당한 무협지가 또 어디에 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교 경전 속의 이야기도 성경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얘기를 두고 방편(方便)이라 합니다. 원래 방편은 깨달은 자가 어리석은 중생에게 진리를 설명하기 지어낸 얘기를 말합니다.
황당하기로 말하자면 그리스 로마 신화도 절대 지지 않습니다.
‘나중에 태어났지만 맏이가 된’ 올림포스 제우스 신 주위의 인물만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원래는 제우스의 형과 누나들이었던 하데스,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는 제우스의 동생이 됩니다.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그들이 어렸을 때 잡아 먹었는데, 훗날 성인이 된 제우스가 아버지에게 토사제를 먹여 그들을 토해내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헤라는 제우스의 누이 동생이면서 정실 부인이 됩니다.
데메테르 역시 제우스의 누이 동생이지만,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페르세포네가 태어납니다. 이 페르세포네는 나중에 저승의 신 하데스가 강제로 부인으로 삼아 버립니다.
헤스티아는 마지막까지 처녀로 남는데 그 전에 동생 포세이돈의 열렬한 구혼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관점으로 보자면 말도 안됩니다.
출발이 이러하니 여기에서 비롯된 얘기들도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황당하다고만 하기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너무나 오래된 역사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재미로 여기기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것이 있습니다.
문고판 그리스 로마 신화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좀 체계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았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은 비교적 많다. 걔중에는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른 것들도 몇 권 있습니다. 그러나 이윤기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판권을 보니 ‘초판 142쇄 발행’이라고 찍혀 있었습니다. 허거덕~! 나 빼고 다 읽었구나… ㅎㅎㅎ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해하기 위한 12가지 열쇠를 제공합니다.
그 중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신발’에 대한 얘기입니다.
콩쥐팥쥐, 신데렐라는 거의 비슷한 스토리 전개 구조를 갖습니다. 그 중에서도 잃어버린 신발 한짝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극에 달하게 됩니다.
왜 하필 신발일까?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 답을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모노산달로스(외짝 신을 신은 사나이) ‘이아손’과 헤라클레스와 함께 그리스를 대표하는 영웅의 하나인 ‘테세우스’의 가죽신 얘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저자는 달마대사 그림에도 지팡이 위에 짚신 한 짝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무슨 뜻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신발 얘기로 시작해서 티타노마키아(티탄 신들과 올림포스 신들의 대결),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 파에톤의 태양 마차, 다프네와 에뤼시크톤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 하데스의 도둑 장가, 오르페우스의 사랑, 데우칼리온과 필레몬, 바우키스의 홍수에 관한 이야기 등등…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그냥 이름만 알고 있던 신들과 그들의 얘기를 이윤기처럼 해박하게 설명해 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선과 악, 사랑과 증오 등 모든 것이 녹아 있는 듯합니다.
가볍게 신들의 족보나 읊어대고 줄거리를 옮기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신화는 ‘상상력’입니다. 스토리 자체만으로는 황당한 무협지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보면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시기가 원하는 창의적 인간형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 교양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