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독서노트가 뜸했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넘었네요. 독서노트를 아마도 예전처럼 자주 보내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책은 꾸준히 읽고 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주제를 정해놓고 몇 달 동안 그 분야를 파고 나가려고 합니다. 읽을 양도 많고 정리해야할 양도 많아 매번 독서노트로 정리하여 보내드릴 시간이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집중적으로 볼 주제는 ‘동양고전’입니다. 주제 자체가 ‘동양고전’ 전체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좀 광범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의 책 읽기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한정되어 집중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서적 열 권을 정했는데, 《사기》,《논어》,《맹자》,《장자》,《대학,중용》,《주역》,《아함경》,《우파니샤드》,《다산문선》,《삼국유사》 등입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플라톤의 〈파이돈〉은 예외이지만, 앞으로는 아마 위 10권의 동양고전과 관련된 주제의 독서노트가 한동안 계속 나갈 것 같습니다. 간간이 다른 책으로 기분 전환할 때도 있겠지만, 몇 달 동안 동양고전의 숲에서 노닐어 볼 작정입니다. 괜찮겠지요? ^^
제 목 : 파이돈
지은이 : 플라톤 / 최현 옮김
펴낸곳 : 범우사 (초판 1987.11.20 / 2006.1.5일刊 2판 4쇄를 읽음/ 값 2,800원
손바닥만한 문고판 책을 오며가며 며칠을 읽었습니다. 읽으며 깊이 반성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전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관한 글을 쓰면서, 소크라테스의 ‘오만함’을 지적했던 제 글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오만함’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이 짧은 대화편에서 느낀 소크라테스에 대한 인상은, 그가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이돈〉은 플라톤의 《대화편》의 하나로,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고 서서히 죽어가는 최후의 모습을 봤던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가 나눈 대화입니다. 첫 페이지에서 에케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무슨 말을 남겼는지,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묻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책 전체의 내용입니다.
겨우 140 쪽밖에 되지 않지만, 책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책 전체의 내용을 단 몇 줄로 요약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재미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 몇 마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고 과정 즉 대화를 들으며 함께 사고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 중에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다시 되돌아와서 봐야합니다.
대화의 주제 자체는 매우 추상적인 것으로, 영혼이 실재하느냐, 그리고 영혼은 과연 사라 없어지느냐 아니면 불사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결론은, 영혼은 실재하며 육체와 달리 불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참으로 할 말이 많아집니다. 지독한 관념론자의 공허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대화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확실히 증명했다고 하는 영혼불사의 명제를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논리적 증명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오로지 비유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비유는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 객관적 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대화를 통해 감동을 받은 건, 그가 주장하는 영혼불사의 명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영혼불사를 확신하고 죽음 앞에 초연하며, 평생을 지혜를 좇아 매진한 애지자로서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세였습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철학하는 자의 최대의 행복이라며,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만이 철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죽음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긴 이야기를 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짧음에도 지혜를 얻고자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파이돈은 그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 그런데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던 것은, 그가 두 젊은이의 반론을 받아들일 때의 그 부드럽고 쾌활하며 열의 있는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론 그 반론에 끼친 영향을 곧 알아차리고, 마치 패잔병들을 모아 정돈시키는 장군처럼 우리로 하여금 그의 토론의 광장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합니다.
-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견해에 동의하여 주게.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자네들의 모든 논리로써 나의 견해에 반대하게. 그리하여 나 자신이나 자네들을 속이는 일이 없도록 해주게. 세상을 떠나는 이 마당에 나는 마치 벌처럼 자네들에게 침을 남겨 놓고 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네.(p.84~85)
그와 같은 긴 이야기를 하기에는 내 남은 목숨이 너무도 짧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그 형상과 여러 장소에 대하여 거리낌 없이 설명해 보겠네. (p.124)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논리’를 말하는 그 열의는 평생토록 지혜를 갈구한 그의 진정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진정성을 보며, 섣부르게 그의 오만함을 지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논리가 아니라 그의 삶 그 자체가 저를 반성케 합니다.
저의 무지와 오만함을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