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담론의 질서》

1.

오랜만입니다. 요즘 들어 저의 독서노트가 뜸해지니,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설명하기가 난감합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독서법의 전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기존의 독서법에 한계를 느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만 했다는 거죠^^). 거기에 회사 업무 또는 사람과의 관계맺음(←술 마셨다는 얘기죠^^)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한 해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읽을 책의 숫자를 정했습니다. 한 달에 최소 10권, 그래서 1년에 120권 정도의 책을 읽자. 아니, 읽고 반드시 느낌이든 내용이든 정리하자,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난 2년 간 이 목표는 별 문제 없이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좀 회의가 듭니다. 지나치게 양적 목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을 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목표도 없이 무조건 ‘심도 깊게 읽자’는 식으로 돌아선 것은 아닙니다. 양적 목표는 여전히 유의미합니다. 스스로 게을러지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의지이니까요. 문제는 내실입니다. 많이 읽되 그 읽은 바를 최대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봤습니다. 피터 드러커처럼 특정 주제를 정해놓고 몇 년씩 거기에 매달리는 방법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반복하면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흉내내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 같습니다. 한 분야를 몇 년간 탐구한다는 것은, 그 효과는 확실할지 모르겠으나, 독서의 ‘지속 가능성’이 의심됩니다. 물론 제 의지의 가냘픔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그간의 제 고민의 궤적을 일일이 설명드릴 수는 없고, 현재의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책을 읽되, 스스로 테마를 정해 일정 기간 지속할 생각입니다. 그 테마는 드러커 식의 특정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보다 현재 나의 일(=직업,업무)과 연관된 것으로 잡을 생각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어쩌다 보니, 국어·논술전문 온라인 교육에 몸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어,논술,독서 교육 업무와 관련이 있는 주제를 잡으면 업무와 개인적 성취감을 모두 이룰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는 제가 내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경기사철’의 완성과도 그 궤를 같이 합니다. 경기사철은 문사철(文史哲)에서 文을 살짝 들어내고 거기에 경영과 IT기술을 의미하는 ‘경기(經技)’ 두 자를 추가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주제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선 미셸 푸코의 《담론의 질서》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 회사 계열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내부 세미나용 교재였습니다. 예전에 그 소식을 듣고 따라 구입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논술 선생님들의 연구와 고민의 발걸음을 따라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결론은, 나 스스로 테마를 정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 그 책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감흥이 다릅니다. 지적 수준과 관심 대상이 조금 다를 수 있으므로, 스스로 테마를 정해 일정 기간 밀고 나가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정한 1차 테마는 서울대 학생들을 위한 권장도서입니다.
작년 말에 서울대 학생들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이 발표됐습니다. 추천도서니 권장도서니 하는 목록화의 폐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지식이 일천하여 스스로 ‘지식 지도’를 그리지 못하는 까닭에, 문화적 다원성과 현재적 의미, 분량과 우리말 번역 등을 모두 고려했다는 선정 기준을 신뢰하면서 일단 시도해보려합니다. 국어·논술을 가르치는 – (물론 가르치는 분은 따로 있고, 저는 그 교육 내용을 ‘서비스’하는 입장이지만^^) – 것을 현재의 업으로 하니 마땅히 알아둬야할 것 같기도 하구요. 우선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에 한정해서 읽을 예정입니다. 아마 반 년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앞으로 독서노트가 고리타분한 고전을 주제로 삼겠다는 말에 실망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고리타분하게 읽더라도 가급적 재미있게 쓰려합니다(가능할까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이 참에 저와 함께 다양한 고전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어떨까요? 재미없으면 그냥 DELETE 키 한 번이면 사라지니, 밑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2.

에구구, 오늘 독서노트 주제는 이게 아니었는데… 새벽부터 취했나? 횡설수설 잡소리만 늘어놓았습니다.


   제   목 : 담론의 질서
   지은이 : 미셸 푸코 / 이정우 옮김
   펴낸곳 : 서강대학교 출판부 (초판 출간일 1998.6.30) / 2005.4.25일刊 초판 5쇄를 읽음 ₩6,000


《담론의 질서》는 미셸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 취임하면서 행한 연설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이 글은 《지식의 고고학》과 더불어 푸코의 방법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글이며, 특히 고고학적 탐구에서 계보학적 탐구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은 하는, 명문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명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푸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우리나라의 푸코 전문가로 불리우는 이정우 교수의 말이니, 아마도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이것이 ‘명문’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추측만 해봅니다.

연설문을 번역한 것이라 실제 책 분량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채 50쪽이 안 됩니다. 오히려 역자의 해설이 130여쪽에 이르니, 사실 책의 제목을 이정우의 ‘푸코 입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첫 장을 넘겼는데, 푸코의 말이 마치 차라투스트라가 10년의 내공 수련을 거친 후 산에서 내려와 혼자 중얼거리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듣고 웃었듯이, 저 역시 혼자 웃으며…. ‘도대체 뭐라는 거야?’하고는 바로 역자 해설편부터 봤습니다.

그나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눔의 문제와 타자의 문제를 시작으로 프랑스 인식론의 전통을 통해 담론의 형성과 변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이어서 근대 주체철학을 비판하고 언표와 담론, 계보학과 권력의 개념을 설명한 뒤 마지막으로 신체의 문제와 주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결코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아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식이 꼬이는 어려운 내용입니다. 알 것 같은 내용과 그냥 눈으로만 읽은 내용 중 아마 후자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전공하지 않은 다른 분들이 읽었더라도 아마 비슷한 느낌이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덮고 부족한 부분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조금은 보충했습니다. 특히 담론과 언표의 정의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이 글의 역자인 이정우 교수와 상명대 박정자 교수의 글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책 내용을 정리하지는 않겠습니다. 독서노트 받아보시는 분이 질릴 것 같습니다.
이 참에 홈페이지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려 합니다. 늘 그랬듯이, 누가 와서 보면 부끄러운, 스스로 정리하는 수준일 것입니다. 동양사상과 서양사상 코너를 만들어, 책 리뷰와는 별개로 하나씩 정리해나가려 합니다. 지난 번 《사기》를 꾸준히 정리하겠다고 해놓구선 몇 차례 싣고는 말아버린 ‘사기 친’ 경험이 있는지라, 좀 조심스럽지만, 일단 한 번 해보는 겁니다. 가다가 아니 가면 간 만큼은 이득이니, 일단 해보는 거죠.

여러분, 오늘도 힘찬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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