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여러 고전을 다루는데 노자의 <도덕경>을 건너뛰고 <장자>를 말하려 합니다. 무슨 큰 뜻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고전을 다 다룰 수는 없고, 그 중에 몇 편을 골라 함께 읽고 있습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기에 <도덕경>보다 <장자>가 좋을 듯합니다.
<도덕경>을 읽어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도덕경>은 매우 짧은 글입니다. 마치 여러 편의 시를 모아놓은 연작시 같습니다. 짧은 건 좋은데 그 뜻을 따지고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이해하고 분석하기 전에 본문 해석에 대한 의견조차 분분합니다. 다행히 <장자>는 <도덕경>에 비해 읽을거리가 참으로 풍부합니다. 또한 대단히 문학적인 글이어서 현대의 그 어떤 책에 비해서도 읽는 재미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넓게 보면 <장자>를 말하는 것은 노자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공자와 맹자를 아울러 공맹|孔孟|이라고 하듯 노자와 장자를 아울러 노장|老莊|이라고 합니다. 노자의 사상을 장자가 계승했다는 말이겠지요. <장자>를 중심으로 두고 간혹 필요하다면 <도덕경> 비교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맹자의 생각이 공자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없듯이, 장자의 생각이 노자의 생각과 같지는 않습니다. 유사한 점이 매우 많지만 다른 점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큽니다. 특히 실천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노자와 장자의 차이에 주목하지는 않겠습니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세세하게 밝히는 것은 학자들의 몫으로 두겠습니다.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와 실천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저와 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노자와 장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고갱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하늘의 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가 바라보는 달이 원래 장자가 가리켰던 그 달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공부하고 전문적으로 연구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장자>를 풀이한 수많은 책들을 참조하여 다시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다보니 장자의 손가락에 여러 후학들의 손가락까지 겹쳐 있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장자의 글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무책임하기도 하고, 굳이 이 책을 보실 필요도 없을 터이고, 어떻게든 풀어 설명 드리기는 하는데, 그러자니 제대로 이해나 한 것인지 스스로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장자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래저래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장자>의 ‘꽥꽥 우는 거위 이야기’에 스스로를 위로할 뿐입니다.
쓸모없는 나무와 꽥꽥 우는 거위
장자가 산 속을 걷다가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했습니다. 나무꾼 하나가 그 곁에 멈춰 섰지만 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장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나무꾼은 “저것은 아무 쓸모가 없소.”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장자가 말했습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장자는 산에서 내려와 옛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기뻐하면서 그의 아들에게 거위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마리는 꽥꽥 울고, 또 다른 한 마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거위를 잡을까요?” 그러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꽥꽥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 <산목>
<장자>를 보면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하는 곳이 많습니다. 천수를 누리는 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나무꾼의 도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장자>의 전편에 걸쳐 줄곧 ‘쓸모없음’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꽥꽥 울지 못하는 쓸모없는 거위를 잡아먹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두 거위 중에서 꽥꽥거리는 거위를 잡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말 못하는 거위가 잡아먹히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장자>는 이처럼 상식적인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재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장자> 이야기에는 수많은 ‘역설’이 있습니다. 고정된 상식을 뒤집어엎는 당혹스러움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읽는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장자가 처음부터 이런 것을 의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말의 덧없음을 일관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이자 진리인 도|道|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도덕경>의 첫 문장은 매우 유명합니다. 도에 대해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노자는 계속해서 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장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옛사람들의 생각의 찌꺼기에 불과하고 진정한 도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전해오는 것만 해도 자그마치 33편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 <장자>를 남겼습니다.
꽥꽥 우는 거위는 어쩌면 장자 자신을 상징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쓸모없음을 알지만, 그러나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현실을 꽥꽥거리는 거위에 비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침묵하는 거위는 본래의 거위 모습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말의 덧없음을 깨달았다고 하지만 침묵만 하고 있는 철학자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침묵할 수 없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장자처럼, 제대로 그 뜻을 전달하지 못함을 알지만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장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천지를 가슴에 품은 장자이기에 저의 요란한 혀놀림도 그냥 웃어넘기시지 않을까요?
장자의 암묵적 동의(?)를 바탕으로 <장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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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편부터 독서노트를 쓰는 대로 모두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냥 보내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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