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勞力|하는 사람은 지배를 받는다
공자가 제자 중에 번지|樊遲|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자보다 46세나 아래였으니 학년으로 치자면 저학년에 해당되는 제자였습니다. 성격이 소박한지 아니면 배움이 얕아서인지 가끔 공자에게 엉뚱한 말을 해서 핀잔을 듣습니다. 하루는 공자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공자가 “나는 늙은 농부보다 못하다.”라고 거절하자 이번에는 밭일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공자가 “나는 밭일하는 노인만도 못하다.”고 또 거절을 했습니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가 한탄하며 말합니다.
“번지는 소인|小人|이구나. 번수야,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로움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을 수고 없고,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진심으로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와 같이 하면 사방의 백성들이 자기 자식을 포대기에 업고 달려올 터인데, 어찌 농사짓는 일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논어> <자로-13>
공자의 생각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즉 군자와 소인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소인은 농사를 짓고 살지만, 군자는 예를 준수하고 인의의 마음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것은 유가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맹자 대에 와서 이 생각은 더욱 굳건해지고, 이론적으로 체계화됩니다.
<맹자> <등문공 上>을 보면 맹자와 진상|陣相|과의 대화를 통해 맹자가 생각한 사회분업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맹자의 대화 상대인 진상은 아마 유학에 뜻을 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등나라로 가서 허행|許行|이라는 사람을 만나고서는 뜻이 바뀌었나 봅니다. 허행의 말과 행실을 보고 감복하여 그를 따르던 무리들과 어울리고 그의 삶을 찬양하게 된 겁니다. 허행은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등나라 문공이 어진 정치를 편다는 소문을 듣고 등나라로 이주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지어 끼니를 연명하고 옷도 직접 해 입었습니다. 돗자리를 짜서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여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다만 자신이 직접 만들지 못했던 모자나 솥 같은 것들은 다른 것을 내다팔아 사 왔습니다. 물론 할 수 있다면 했겠지만 농사를 짓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허행의 학파를 농가|農家|라고 합니다.
다음은 허행을 칭송하는 진상과 이를 반박하는 맹자의 대화입니다. 본문에서 허행을 허자|許子|로 칭하고 있습니다.
진상 : 현명한 임금은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음식을 먹고, 아침·저녁을 손수 지어 먹으면서 나라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등나라 임금이 현명한 군주이기는 하지만 아직 이에는 미치지 못하나 봅니다.
맹자 : 허자는 반드시 곡식을 심고 직접 길러 먹습니까?
진상 : 그렇습니다.
맹자 : 허자는 베를 직접 짜서 옷을 만들어 입습니까?
진상 : 아닙니다. 굵은 베나 털가죽으로 만든 거친 옷을 입습니다.
맹자 : 허자는 모자를 씁니까?
진상 : 씁니다.
맹자 : 무엇을 씁니까?
진상 : 흰 비단을 만든 모자를 씁니다.
맹자 : 그것도 스스로 만듭니까?
진상 : 아닙니다. 곡식을 가지고 바꿉니다.
맹자 : 허자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베를 짜서 만들지 않습니까?
진상 : 밭갈이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맹자 : 허자는 가마솥과 시루로 밥을 짓고, 쇠로 만든 농기구로 밭을 갑니까?
진상 : 그렇습니다.
맹자 : 그런 것들도 스스로 만듭니까?
진상 : 아닙니다. 곡식을 가지고 바꾸지요.
맹자 : 곡식을 가지고 농기구나 그릇을 바꾸는 것은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이나 쇠붙이를 다루는 대장장이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 아닙니다. 도공이나 대장장이도 역시 그들이 만든 물건으로 곡식을 바꾸니 어찌 농부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겠습니까? 허자는 어찌해서 도공이나 대장장이가 되어 직접 만들어 쓰지 않습니까? 왜 분주하게 여러 장인들과 교역을 합니까?
진상 : 도공이나 대장장이가 하는 일은 농사를 지으면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맹자 :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 유독 농사를 지으면서 할 수 있는 건가요? 대인|大人|의 일이 있고 소인|小人|의 일이 있습니다. 가령 한 사람의 몸으로 여러 장인이 하는 일을 고루 갖추어, 반드시 자신이 스스로 만든 다음에야 이를 사용한다면, 이것은 천하의 사람들을 할일이 없게 만들어 모두 길바닥으로 내앉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마음을 쓰고, 어떤 사람은 힘을 쓴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쓰는 사람(노심자|勞心者|)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사람(노력자|勞力者|)은 다른 사람에게서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을 먹여 살리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의 부양을 받게 되는 것이 천하의 공통된 도리입니다.
꽤 긴 대화의 일부만 옮겼습니다.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맹자의 말이 훨씬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자급자족을 외치면서 정작 남이 만든 모자와 농기구를 이용하는 허자의 논리적 허점을 맹자는 그대로 찌르고 있습니다. 위 발췌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물건의 가격은 크기가 같으면 모두 같은 가격을 매겨야 한다는 진상과 이에 대한 맹자의 반격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허자의 사상은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과연 그런지, 맹자의 논리를 차근차근 따져보겠습니다.
위 대화에서 중간에 생략된 부분은 맹자가 요순시절의 요임금과 순임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맹자는 요와 순임금이 나라를 안정되게 만들고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일에 전념하느라 농사를 지을 시간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임금은 임금의 역할이 있고 농부는 농부의 역할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회는 나름대로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간의 분업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맹자의 논리입니다.
맹자의 말이 분명 맞습니다. 원시 공동체 사회 이후로 문명이 발달하면서 더 이상 자급자족만으로 유지된 사회는 없었으니까요. 맹자가 말한 마음을 쓰는 사람은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이고, 몸을 쓰는 사람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주된 업무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은 그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을 봉양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것입니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맹자의 생각에는 군주의 일이나 농부의 일이나 모두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임금은 비록 마음을 써서 큰일을 하지만 농부들 없이는 먹고 살수 없으니, 임금과 농부는 그 역할만 다를 뿐 서로 수평적인 보완관계라는 믿음이 없다면 요순 임금과 농부를 서로 동등하게 비교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통치할 능력이 없는 소인은 군자나 대인들로부터 다스림을 받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백성들이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임금과 농부는 그 일만 다를 뿐 서로 수평적인 보완 관계였을까요? 단언컨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엄연하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수직적인 관계인 거죠. 서로간의 분업을 수평적으로 보느냐, 아니면 수직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맹자의 노심자, 노력자 역할 구분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논어>를 읽으면서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따라서 오로지 현대의 잣대로 과거의 사상을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 발전 단계로 볼 때 맹자 시대에 수직적 지배·피지배 관계를 극복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든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상을 따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닌 고전의 창의적인 수용을 위해 맹자의 말에 딴죽을 한 번 걸어보겠습니다.
허자의 논리에는 분명히 허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것을 간파한 맹자의 논리는 치밀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과의 대담에 방청객이 있었다면 대부분 맹자의 손을 들어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려 깊은 방청객이 있었다면 다음과 같이 질문했을 것입니다.
“맹 선생님, 지금의 임금이 백성들과 함께 농사도 짓고 어울리고 싶지만 통치하고 교육하느라 도저히 짬이 안 나서 밭일을 못하는 건가요? 백성들도 통치하고 교육도 하고 싶지만 농사일 때문에 바빠서 못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백성들 중에 농사일을 빨리 끝내고 시간이 된다면 임금처럼 통치도 하고 교육도 할 수 있는 건가요?”
맹자가 말한 노심자와 노력자의 구분, 즉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과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의 구분은 단순히 그 역할의 구분이 아닙니다. 역할의 구분이라면 때로는 역할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하는데, 맹자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역할의 구분이자 엄연히 신분의 구분인 것입니다. 수평적인 것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지만, 수직적 신분 관계는 위계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강압적인 관계입니다. 이 둘은 엄격하게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맹자의 논리는 결국 지배자와 피지배 계급 관계를 고정화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대인과 소인의 구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날 때부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지배자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죠. 마찬가지로 왕도 처음부터 그 나라의 왕이었나요?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에서 이겨서 그 자리를 강탈한 것이지요. 땅에는 애초에 주인이 없었습니다. 그런 땅을 빼앗고 독차지해서 그들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대인 또는 지배자라는 사람들은 이미 빼앗고 약탈하여 그 자리를 차지한 기득권 세력입니다. 맹자의 대인과 소인의 논리, 즉 노심자와 노력자의 논리는 결국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관계를 교묘하게 속이고, 폭력과 수탈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해도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맹자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맹자는 이미 고착화된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서 지배자의 덕치를 강조하여 피지배자인 백성들을 안락하게 하려했던 점은 매우 높게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맹자가 문제 삼았던 것은 지배 논리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맹자에게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구분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다만 정당한 지배인가 그렇지 않은 지배인가 하는 차이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위정자들은, 맹자의 본의와는 다르게 그들의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공맹의 사상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어리석은 위정자들이 무력을 앞세워 단명했다면, 좀 현명한 위정자들은 백성을 앞세워 장기 통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좀 아쉽지만, 그러나 여기서 <맹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