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편인데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재미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회사에서 또 누가 꼭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소설은 별로 읽지 않는다고 했더니, 이 책은 소설이 아니랍니다. 속는 셈(?)치고 읽었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턴은 『쥬라기공원』, 『잃어버린 세계』, 『트위스터』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이 있으나 영화화된 것을 꼽으니 이 정도입니다. 아쉽게도 전 그의 전작들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행히 영화는 모두 보았으니 그래도 낯설지는 않습니다. 프로필을 보니 하버드대 인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또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그의 과학 소설이 탄탄한 이유 중 하나일 거라 미루어 짐작합니다.
제 목 : 넥스트
지은이 : 마이클 크라이튼 / 이원경 옮김
펴낸곳 : 김영사 / 2007.7.23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3,000
『넥스트』의 주제는 생명공학, 바이오테크놀로지입니다. 숱한 전문용어가 나오지만 이상하게 생소하단 느낌이 덜합니다. 황우석 열풍이 몰아칠 때 이미 줄기세포니, 배아줄기세포니하는 말을 익히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워낙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라, 그때 배아줄기세포의 전능함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생명공학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희망했던 때였습니다. 황우석 스캔들은 이 책에서도 신문 기사 형식으로 잠깐 등장합니다.
소설 속의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인 프랭크 버넷은 백혈병에 걸려 1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습니다. 그때 그는 세계 최고 권위의 그로스 박사에게서 치료를 받습니다. 1년만에 그는 완치를 확신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박사는 병이 마치 재발한 듯 주기적으로 버넷에게 검사를 종용합니다. 자그마치 4년 동안. 그 동안 박사는 버넷의 몸에서 채취한 세포를 바이오젠이라는 제약회사에 팔았던 것입니다. 버넷의 세포가 발암 억제에 탁월한 TLA7D라는 물질을 다량으로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상업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포의 소유권이 제약회사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 세포가 모두 오염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이오젠은 그 세포를 다시 구해야하는데, 전문 체포꾼을 동원하여 그의 딸과 손자를 납치하여 강제로 세포를 추출하려 합니다. 그들이 목숨 걸고 도망다니고 있을 때, 법정에서는 그들의 세포를 강제로 추출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양측의 변론이 한창입니다.
제약회사를 대표해 나온 변호사의 말입니다.
- 법원은 바이오젠이 이 세포의 소유권자라고 판결했습니다. 버넷 씨의 몸에서 나오는 바이오젠의 재산이죠. 따라서 언제든 그 세포를 되찾을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
도망자 체포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근거로 시민권에 의한 체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버넷 씨의 후손들을 목격한다면, 그들은 바이오젠의 재산을 갖고 돌아다니는 것인 만큼, 명백한 사유재산 횡령 혐의에 따라 체포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p.443)
법적 절차를 거쳐 세포의 유전자 특허를 취득했으니, 그 세포는 회사의 것이고, 그래서 그 세포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사유재산 횡령이라는 논리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소설은 매우 진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침팬지에 인간의 유전자를 삽입해 만들어진 유인원 ‘데이브’,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앵무새 ‘제라르’도 비중 있는 배역으로 등장합니다. 폭력과 약물 중독 등으로 사회적 부적응자가 ‘성장 유전자’를 먹었더니 금새 온순해졌다는 얘기, 그러나 빨리 노화되어 조기 사망한 사건, 병원 영안실에서 시체의 뼈를 상습적으로 밀매하는 일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광고 홍수 시대에 바닷속 물고기와 산호초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광고 문구를 새기자고 떠드는 인간의 모습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집니다.
소설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또 섬뜩합니다. 비록 픽션이기는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달라보입니다. 픽션이고 미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미래는 먼 FUTURE가 아니라, 바로 다음 다음, NEXT입니다. 임박한 현실입니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다섯 가지를 요구합니다. 세상을 향해, 미국을 향해. 그 중 핵심은, 제1 요구사항인, 유전자 특허를 중지하라!
- 유전자는 실재하는 자연이다. (…) 자연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유전자 검사법이나 유전자 치료제를 소유할 수는 있어도 유전자 자체를 소유할 수는 없다. (…) 유전자 특허를 인정하는 것은 철이나 석탄에 특허를 주는 것과 같다. 즉, 자연 자체에 특허를 주는 것이므로 유전자 특허는 부당한 독점이다. (p.489)
그리고 제가 알지 못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이지만, (…)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과학자들은 그 게놈의 소유자가 불분명해서 연구를 하지 못했다. 유사한 특허가 세 개나 동시에 접수되었기 때문이다. (…) 치사율 10퍼센트에 이르는 전염병이 전 세계 24개국을 휩쓰는 판국에, 이 병을 물리치기 위한 과학 연구가 금지된 것이다. 특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C형 간염, 에이즈, 뇌수막염을 비롯한 각종 당뇨병 유전자 모두를 개인이나 집단이 소유하고 있다. 안 될 말이다. 어느 누구도 질병을 소유할 수는 없다. (p.491)
질병 유전자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나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독서유감]
1.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섬뜩했다. 재미와 동시에 유전자 특허에 대한 경각심이 일었다.
2. 소설을 읽을 때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등장인물이 많아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나의 머리나쁨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나같은 독자층까지 확대하려면 등장인물에 대한 색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문서에는 보통 용어에 대한 색인이 있다. 소설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색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머리 나쁜 나는 책 뒤에 이렇게 써가면서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