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일주일 동안 한 권의 책도 버겁게 느껴지니 제 생활에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책을 규칙적으로 읽은 정도를 일러 ‘독서지표’라고 하면, 주말 내내 또 아프고 보니 제멋대로 만든 독서지표라 해도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저에게 적당한 독서지표는 대략 주당 두 권의 독서와 독서노트 정리인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크거나 작을 때, 특히 작을 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목 : 선비답게 산다는 것
   지은이 : 안대회
   펴낸곳 : 푸른역사 (초판 출간일 2007.2.12 / 2007.2.27 초판 3쇄를 읽음) ₩12,000


조선 중종 때 훈구대신들에게 밀려 사림이 죽거나 쫓겨난 기묘사화가 있었습니다. 이때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도 정계에서 축출당해 시골에서 작은 정자를 짓고 학생을 가르치고 책을 지으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 정자 이름이 은휴정(恩休亭)인데, 임금의 은혜로 쉰다는 뜻입니다. 불행조차도 다행으로 여기고 원망 대신 고마움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그는 호도 새로 지어 팔여거사(八餘居士)라 했습니다. 여덟가지 넉넉함이 있는 선비라는 뜻입니다. 벼슬에 쫓겨 시골에서 궁핍하게 살고 있는 자기를 일러 팔여거사라니. 친구가 그 뜻을 물었습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배불리 넉넉하게 먹고, 부들자리와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땅에서 솟는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날에는 꽃을 가을에는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들의 지저귐과 솔바람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에서는 넉넉하게 향기를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기에 팔여라고 했네

친구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이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다네.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다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그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내 자네를 따라서 여덞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 속물을 따라서 부족함을 걱정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네그려.

역시 유유상종, 그 선비의 그 친구입니다.

숙종 때의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은 만권 장서가였습니다. 그의 글 중 하나.

가난한 집에 가진 거라곤 책 다섯 수레뿐(家貧只有五車書)
그것을 제외하면 남길 물건이 전혀 없다(此外都無一物餘)
살아서나 죽어서나 서책을 못 떠나니(生死不離黃卷裡)
전생에는 틀림없는 좀벌레였나 보다(前身應是食仙魚)

책을 좋아한다고 스스로를 좀벌레라 하니, 읽다가 웃었습니다.

성리학자 어유봉(魚有鳳)은 <동유기(東遊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하는 것과 같다.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실은 충분히 익히고 또 익히는 데 핵심이 있다. 굽이굽이 환하게 파악하고, 그 자태를 또렷이 간직하고, 그 정신을 통해야만 비로소 터득하는 것이 있다. 서둘러 대충 섭렵하고서야 무슨 수로 오묘한 경지를 얻을 수 있으랴?

대충 사는 제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말입니다.

오늘 독서노트, 쓰기 참 쉽습니다. 옛 선비 글 몇 토막 옮겨놓고 보니, 어설픈 제 말 장황하게 널어놓는 것보다 백배는 낫습니다.

월요일 아침 한주를 여유롭게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옛 선비들의 문장 몇 줄 빌려왔습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