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내려앉는 잇몸, 새벽 2시의 불면증, 당혹스러운 건망증, 우두둑거리는 어깨관절뼈 소리를 들으며 어느덧 마흔아홉이 지나간다.
구본형 소장의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구소장은 마흔이 넘으면서부터 가끔 불면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가 터득한 불면 퇴치법은, 오히려 불면증과의 동행과 동침입니다.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40대에 찾아오는 불면 또한 그런 것이라 말합니다.
아직 제 나이 마흔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불면에 시달립니다. 이런 증상을 보인 지 두어 달 되었습니다. 가끔 새벽 한두 시에 눈이 떠져 그것이 곧 하루의 시작이 될 때도 있고, 오늘처럼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없는 날도 있습니다. 조로(早老)한 것일까요.
그나저나 오늘은 새 회사로의 첫 출근날입니다. 사실은 지난 달 말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2003년 12월에 사장님과 함께 큰 꿈을 안고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성과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처음 품은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하고 안타깝고, 진인사(盡人事)하지 못했음이 후회됩니다.
다행히 아직 인생 전반전도 뛰지 못한 젊음이 있어, 사람을 진실로 대하며 갈고 닦은 능력을 다하여 진인사(盡人事)할 기회가 더 있으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제 목 : 지혜로운 킬러
지은이 : 이정숙
펴낸곳 : 갤리온 (초판 출간일 2006.1.17 / 2006.11.30 발행 초판 6쇄를 읽음) ₩9,500
회사를 나오며 두 권의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정숙의 《지혜로운 킬러》입니다. 이정숙은 한국 여성 최초로 월스트리트에 진출해 13년 동안 국제 금융의 중앙 무대에서 활약했던 사람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 한국 주식 시장의 전문가로서 활약했던 그녀의 별명은 ‘킬러’였습니다.
이 책은 그녀가 어떻게 월스트리트에서 ‘살아남았는지’를, 또 어떻게 경쟁자를 ‘이겼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생존 피라미드인 월스트리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망가지 않고, 쓸데없이 공격하지 않고, 소리 없이 승리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느끼는 바도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열정을 사랑하지만 살벌한 경쟁심은 지독히도 싫어합니다. 종종 이 둘의 차이가 모호할 때도 있지만 저는 그 차이를 남에 대한 배려라고 봅니다. 배려가 없는 열정은 독(毒)일 뿐입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그러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녀가 하는 일의 성격 때문인지 이 책에서 ‘배려’를 찾기는 참 힘이 듭니다. ‘친구는 없다, 등 뒤를 조심하라’, ‘월스트리트 수명은 개의 수명과 같다’ ‘인간 세계는 동물의 왕국이다’는 등. 이 책은 ‘경쟁’에서 지혜롭게 살아나가는 처세를 담고 있습니다.
진정한 처세는 통찰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 잘쓴 책은 아닌 것 같지만 – 문장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 대신 진실함이 배어 있고 자신의 전문분야의 경험을 통한 통찰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행간 곳곳에 살벌한 칼냄새가 덜 지워진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 은은한 인간의 향기가 더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보다 이 책을 제게 건내준 이가 더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