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구주어식 지도법

경향신문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24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경향신문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24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경향신문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24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구주어식’ 지도법

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 해도 공부하는 품새가 영 마뜩잖다. 게다가 채점을 해보니 고민 없이 푼 흔적이 역력하다. 분명히 예전에 풀어본 적이 있는 문제인데도 또 틀렸다. 몇 문제는 아예 손도 못 댔다.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참기 힘들다. 이럴 때 나오는 첫 마디, “야, 똑바로 앉아!” 일단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똑바로 앉혀놓고 잔소리를 시작한다. “이건 왜 틀렸니?” “이런 걸 왜 몰라!” “집중을 해야지, 다시 한번 풀어 봐!”

엄마는 답답하다. 공부의 흥미를 느끼게 하여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만들겠다는 소박한 마음은 이 순간 온데간데없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퍼붓고 나면 속상하기는 엄마도 매한가지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 아이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일전에 말한 바 있다. 무기력해지기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화 내지 않고 가르칠 수 있을지,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한결같은 고민이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알아본다.

수학을 예로 들어 보자. 「민수의 나이는 11살이다. 아버지의 나이는 민수보다 28살 많다. 10년 후 두 사람의 나이를 모두 합하면 몇 살이 되는가?」 이런 문제를 아이가 모른다고 가정해보자. 보통 이렇게 설명을 한다. ① 민수 나이는 몇 살이니? ② 아버지 나이는 몇 살이니? ③ 민수가 10년 후에는 몇 살이 되니? ④ 아버지는 10년 후에 몇 살이 되니? ⑤ 이제 그 두 숫자를 더하면 얼마가 되니? 이런 순서대로 차근차근 물어보면 웬만한 아이들은 거의 이해를 한다. 그런데 문제의 난이도가 조금 높아지거나 변형되어 출제되면 또 틀리는 아이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설명해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아이를 6년 동안 가르치다보면 엄마는 웬만한 초보 공부방 선생님보다 실력이 더 좋은데, 정작 우리 아이의 실력은 제자리다.

비슷한 문제를 또 틀리거나, 문제가 조금만 변형되어도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까닭은 ‘문제해결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제해결력은 창의력과는 다른 능력이다. 문제해결력은 답이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학교에서 출제되는 문제는, 문제 속에 주어진 조건을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해결하면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마다 조건이 다르고, 요구하는 지식이 다르다.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키워줘야 할 것이 문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다. 문제 속에서 주어진 조건을 분석해내는 능력이다. 요리 잘하는 사람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도 한번 맛보면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집에서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늘 남이 해주는 음식만 먹었던 사람은 요리의 재료를 분간할 능력도 모자라거니와 결정적으로 직접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위 문제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질문한 다섯 가지 질문은, 실은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엄마가 문제를 분석하여 순서대로 모든 것을 일러주니, 그 순간은 아이가 이해하기 쉽지만, 다른 문제를 대할 때 아이는 또 주저하게 된다. 우리 아이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엄마가 문제를 잘게 조각내서 질문하는 것에 답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엄마의 그 질문 자체를 스스로 할 줄 아는 능력이다.

“집중해서 다시 풀어봐”, “잘 생각해 봐” 이런 지시는 아이의 문제해결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중하는 방법, 생각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도 않고 지시만 해서는 안 된다. 틀린 문제를 가르쳐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여기서 구하는 것이 무얼까?”이다. 많은 아이들이 머릿속에 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막연한 상태에서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위 문제라면 ‘10년 후 민수와 아버지 나이의 합’을 구하는 것이다. 엄마에게는 쉽게 보이지만 아이는 이 첫 단계도 낯설어할 수 있다. 여러 문제를 보여주자. 그리고 그 문제를 다 풀려하기보다는 각각의 문제에서 ‘무엇을 구하는지’만 물어보자. 여러 문제를 통해 아이는 문제 속에서 ‘구하는 것’을 찾는 법을 배우게 된다.

다음으로 질문해야 할 것이 “그것을 구하기 위해 문제에서 주어진 조건이 무엇이 있을까?”이다. 조건을 잘게 분석하는 능력을 매일 연습하는 것이다. 조금만 연습하면 조건을 분석해 낼 수 있다. 길어도 며칠 정도만 꾸준히 연습하면 문제 속에서 주어진 조건을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어진 조건이 무엇인지를 틀리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물어보자. “왜 이런 것도 몰라?”라는 비난성 질문을 하지 말자. 구하는 것과 주어진 조건이 무엇인지를 반복적으로 물어봄으로써, 우리 아이가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구하는 것이 무얼까’, ‘주어진 조건이 무얼까’를 생각하도록 하자.

구하는 것과 조건을 모두 찾았으면, “그럼, 어떻게 풀어볼까?”라고 해보자. 이 단계가 가장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가 매우 답답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구하는 것과 조건을 알았으면 충분히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그러나 절대로 화를 내서도, 초조해 해서도 안 된다. 참는 시간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임을 명심하자. 아이에게 그런 느낌이 전달되면, 아이의 두뇌는 사고를 멈춘다.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이의 생각 근육을 키우기 위함이다. 조금 더 기다리자. 아이가 헷갈려하면 힌트를 조금씩 주자. 결정적 힌트는 안 된다. 결정적 힌트를 제외한 주변적 힌트를 주면서 아이가 스스로 최대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간이다.

아이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면, 그 다음에 “식으로 옮겨보자”고 하면 된다. 문제해결의 과정을 식으로 옮기는 데는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만 도와주자. 이상의 네 단계, ‘구하는 것은 무얼까, 주어진 조건은 무얼까, 어떻게 풀까, 식을 세워보자’의 첫 자를 따서 ‘구주어식’이라 명명하면 쉽게 기억할 수 있다.

구주어식은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가장 기본적인 공부습관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이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원래의 지도 방식으로 돌아간다. 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 없이 우리 아이의 문제해결력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TV 축구 중계만 보게 하면서 박지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축구 중계가 아니라 축구화를 신고 직접 공을 차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로 끝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적절한 격려와 공감의 기술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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