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이익 추구는 인간 관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맹자》 첫머리에 나오는 양혜왕과의 대화를 가지고 너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마다 ‘이익’을 바라는 풍토에 대한 맹자의 경계가 마치 오늘의 우리에게 하는 경고 같아서입니다.
맹자는, 왕이 이로움을 생각하면 대부는 대부대로, 사|士|는 사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서로 이익만 취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왕 스스로 먼저 이익을 취하는 자세를 버리고 인의|仁義|를 취하라고 합니다. 고위 관료에서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들 자기만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 모습은 마치 지금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은 개인대로, 집단은 집단대로, 오로지 자기만 가지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려고 하는 마음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달리 보면 가지려고 하는 것 자체는 누구에게나 고유한 본성일 수 있으니까요. 정작 문제는, 이익만 좇다가 사회적 관계가 황폐화되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악의 병폐는 인간다움의 몰락입니다. 곧 서로 간의 ‘관계의 황폐화’입니다. 관계가 황폐화된 예는 많습니다.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 미화원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뭘’이라는 생각에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들 또한 돈을 받고 일하는 직업인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존경심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회사의 사장은 제돈 다 주고 일 시킨다고 생각하고, 직원은 돈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가치가 환산될 때 고마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몰락이요, 관계의 황폐화입니다. 서로가 이익만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최악의 병폐입니다.
맹자는 이런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군주와 지식인의 도덕성 회복에서 찾고 있습니다. 군주가 인|仁|으로 돌아가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의|義|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인|仁|과 의|義|는 명확하게 정의내리기가 힘듭니다만, 의|義|는 인|仁|을 보다 사회적으로 확대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仁|이 인간다움을 뜻한다면, 의|義|는 사회적인 인간다움을 말합니다. 맹자는 이익 추구로부터 비롯된 인간다움의 황폐화를 경고했던 것입니다.
맹자가 만약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요? 강대국의 입맛에 맞게 추진되는 세계화와 이로 인한 세계적인 빈부의 양극화, 대량 해고와 청년 실업의 현실. 맹자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브레이크 없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의 끝을 경계하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내일 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