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魯迅) – 희망은 길이다

제   목 : 희망은 길이다
부   제 : 루쉰 아포리즘
지은이 : 이욱연 편역
출판사 : 예문 (출간일 2003.12.8)


제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이 “방법은 없다”입니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루쉰의 어떤 책을 읽다가 밑줄 그어놓고 반복하여 되뇌이던 것이었는데요, 정확하게 그 책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은, 머리 속으로 아무리 고민고민해도 풀리지 않을 때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딪쳐서 해결하라는 뜻이지요. 쉽게 돌아가는 방법보다는 부딪쳐 해결해야 하는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아직까지도 그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루쉰(魯迅)이 누구인가?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혹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한자 그대로 노신이라고 불렀지만 요즘은 원어의 발음을 존중하여 루쉰이라 부릅니다.
루쉰의 본명은 주수인(周樹人), 이것도 원어의 발음을 따르면 저우수런이라고 해야겠죠. 루쉰은 그의 많은 필명 중의 하나인데 가장 널리 알려져있는 필명입니다.
대표작은 아큐정전(阿Q正傳)과 광인일기가 있습니다.제가 본 게 이것밖에 없구요^^  실제 그의 명문은 《루쉰전집[魯迅全集]》(20권, 1938), 《루쉰 30년집》(10권, 1941)을 통해 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어루요^^
두산세계대백과에 의하면, 루쉰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空轉)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루쉰의 그런 사고가 또렷하게 부각되는 주옥같은 글들을 엮어놓고 있습니다.
그의 글에는 결코 낭만이나 공상 따위가 묻어 있지 않습니다.

“혁명은 고통스러운 것으로, 필연적으로 더러운 것이며 피가 섞이기 마련이다.”(p.106)
“혁명가는 반혁명가에게 죽는다. 반혁명가는 혁명가에게 죽는다. 비혁명가는 혁명가로 간주되어 반혁명가에게 죽든가, 반혁명가로 간주되어 혁명가에게 죽든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혁명가 또는 반혁명가에게 죽는다.”(p.115)

그리고 아큐정전에서처럼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과연 그가 중국 사람인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중국인들은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으며 기만과 속임수로 갖가지 기묘한 도주로를 만들고는 스스로 그것이 정도라고 여긴다.”(p.182)
“어리석은 백성은 우민 정책의 결과다. 진시황이 죽은 지 2천여 년이나 되었지만, 역사를 보라. 그 뒤 그런 정책을 쓴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 효과는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지속되고 있는가!”(p.200)
“중국 책은 조금 읽거나 아예 읽지 말고, 외국 책을 읽는 것이 좋다.”(p.212)

그러나 중국에 대한 비난과 저주와 증오는 결국 중국에 대한 간절한 사랑의 다른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04년 루쉰이 일본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배우다가 갑자기 문예 운동으로 전환하게 된 사연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 해 공부를 채 끝내지 않고, 나는 도쿄로 나와버렸다. 그 필름을 본 뒤로는 의학이라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제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해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구경꾼이 될 뿐이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해도, 그런 일은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첫째로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을 개혁하는 것이다. 정신을 개혁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문예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문예 운동을 제창하리라고 작정하였다.”(pp.129~130)

중국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평생 ‘희망’과 ‘미래’를 얘기하며 청년의 소중함을 이야기합니다. 청년은 중국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주옥같은 글들이 빼곡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간간이 곁들여진 이철수의 판화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 되는데, 루쉰의 글맛과 참 잘 맞아떨어집니다. 군더더기 없는 글과 군더더기 없는 그림의 만남.

루쉰의 여러 작품 중에서 저자가 평소에 눈여겨 본 문장만 골라 엮은 것이라 출퇴근길에 부담되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대개의 아포리즘 책이 그러하듯, 원문에서 홀로 떨어진 명문(名文)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저자처럼 루쉰의 그 모든 책을 다 읽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저자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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