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촌수, 변화하는 인간관계

직장을 옮기고 난 다음 요 몇 년간 쓰지 않았던 MSN 메신저를 새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서로 대화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대화 상대와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관계가 정리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회사 내에서 메신저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메신저에 사용되는 특정 포트를 막아서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제가 시행했던 것인데, 당시 직원들의 반발을 감수하고서도 이 제도를 추진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단계였습니다. 직원들 수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더니 편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직접적인 면대면 대화 대신 라이브 메신저를 사용한 대화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말 없는 의사소통’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몇 안 되는 직원들 중 상당수가 퇴사하고 난 후에야 사태가 진정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메신저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정말 업무상 꼭 필요하다면, 가령 내부적으로 파일을 주고 받는 등, MSN 대신 네이트온을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대세는 MSN이었고, 네이트온은 막 출시된 상태라 주위에 사용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역전됐지만요.)

저는 업무 시간 중의 메신저 사용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창조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실시간 메신저는 해로움 이상의 해악(害惡)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중력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늘 연결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대화가 가능한 리스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 다소 분산이 되는데, 무엇보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불쑥불쑥 대화창이 열릴 때가 가장 난감합니다.

집중력은 업무 시간을 알차게 보내어 업무 성과를 높일 뿐 아니라 업무 시간 자체를 단축하는 데 핵심이 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집중력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쉽게 깨집니다. 휴대전화와 상사의 호출, 그리고 예고 없이 열리는 메신저 대화 창 등. 흐름을 한번 놓치고 나면 다시 집중이 될 때까지 짧게는 수 분, 그러나 대개는 수십 분의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나에게 1시간이 주어졌을 때, 10분씩 6번의 시간을 쓸 수도 있고, 한 번에 1시간을 연속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만약 창의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10분씩 쪼개진 여섯 번의 시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들의 모음입니다. 10 * 6 = 10이 되는 상황입니다. 시간 관리의 첫 번째 원칙이 바로 ‘연속된 시간’의 확보입니다. 그래야 뭘 하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투리 시간에는 자투리 일들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제   목 : 디지털 촌수, 변화하는 인간관계
   시리즈 : SERI 연구 에세이 – 17번
   지은이 : 김유정
   펴낸곳 : 삼성경제연구소 / 2007.1.8 초판 발행, 2007.4.23 발행 초판 2쇄를 읽음 / ₩5,000


업무적인 관점에서는 이러하지만 개인적인 관계 형성면에서 보자면 또 다릅니다. 메신저, 이메일, 사이버 커뮤니티는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만드는 매개가 됩니다.
SERI 연구 에세이 17번 《디지털 촌수, 변화하는 인간관계》는 바로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 신(新) 인간관계 – 디지털 인간관계를 해부하고 있습니다. 해부라기보다는 정리에 가깝습니다.

이메일과 이동전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시대에 디지털과 모바일에 의존하여 변화하는 인간관계를 파악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점차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전환하고 있는 시점에서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고 있습니다.

말 대신 문자로, 긴 문자열 대신 짧은 단문 메시지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고, 이런 현상이 주는 사회적 의미를 살펴봅니다. 문자로 소통(이메일, 메신저, SMS 등)하고 가상 세계에서 무리짓는 행위(사이버 커뮤니티),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나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인해 묶여 있는 상태(모바일 이동통신)를 묘사하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부정적인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등장을 ‘발전’이라 표현하지 않고 ‘변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최종 평가는 이러합니다. 디지털 시대, 나아가 유비쿼터스 시대가 되어 입는 컴퓨터나 들고 다니는 지갑형 컴퓨터가 일상화된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파격적으로 전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학자들이 사람들의 이동이 없어 도시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더 도시에 집중되고, 컴퓨터로 인해 종이가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시력의 생물학적인 한계로 모니터에만 의존할 수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온라인의 관계확장가 더불어 ‘번개모임’이라는 원초적 모임이 성행하고, 여전히 스타벅스에는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인간관계 자체를 파격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융통성 있는 관계로 진화시킬 따름이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입니다.

그 결론에 저도 100% 동감합니다. 나아가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물물 교환에서 화폐를 매개로 한 교환으로 진화하면서 마치 화폐로 인해 생산물이 가치를 부여받고 상품으로서 생명을 부여받는 것처럼 나타나는 신비한 역전 현상, 화폐가 상품들의 신으로 나타나는 기묘한 현상, 즉 맑스가 말한 ‘물신주의’가 생겨났습니다.
화폐에서 더 나아가 신용카드 한 장이면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대책 없이 어린 신용불량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모두 본질이 거세당한 껍데기를 마치 실체인 양 착각한 탓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관계’이며, 관계의 기본 유형은 만남, 즉 접촉입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의사전달 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요소, 사회 맥락적 단서, 감정의 소통이 가능합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이들 상당 부분이 제거된 빈곤한 미디어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할 때만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관계의 ‘확장’으로서, 유용한 ‘도구’로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식을 가지고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용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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