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01] 신화 속의 인물 1 – 삼황(三皇)

대학교 전공 과목 중에 고문|古文|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문|拷問|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분하고 졸리고 재미없고, 그래서 그 시간은 정말 고문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시험도 순전히 암기 시험이었습니다. 하기야 한자를 공부하는 데 외우지 않고 알아갈 방법이 없었겠지만, 아무튼 엄청난 고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논어의 몇 문장을 배웠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왈, 학이시습지하니 불역열호아,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 인부지이불온하니 불역군자호아.”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몇 번을 배웠는지 모를 저 문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제 때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사람이 나를 몰라줘도 화내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없는 저 말을 왜 또 배워야하는지를 몰랐습니다. 배우고 익히니 기쁘다고? 공자는 공부를 좋아하나 보다. 친구가 오니까 즐겁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남이 나를 몰라줘도 성내지 않으니 나는 군자다? 그래 참을성이 좀 많나 보지. 자기더러 군자란다, 공자도 참 웃기는 사람이네.
도대체 저 말이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배우고 또 배운단 말인가.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논어》의 제일 첫 페이지 첫 문장이 겨우 저 정도란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논어》는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도 귀에 쏙쏙 들어올 만한 멋진 문장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저 그런,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말들뿐이었습니다. 봄날 오후에 밀려오는 참기 힘든 졸음처럼 《논어》와 공자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게 잊혀지고, 그렇게 저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공자와 《논어》에 대한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인상이 획기적으로 바뀐 건, 제가 사회에 나와서 전공과 무관하게 그냥 재미로(!) 공자와 《논어》 관련 책을 읽고 나서부터입니다. 공자라는 사람에 대한 상상 속의 선입견이 깨졌습니다. 2미터가 넘는 거구, 우락부락한 인상, 툭 튀어나온 머리, 입바른 소리만 하는 것 같지만 한 없이 인간적인 면모, 초인적인 강인함과 정신적인 고결함을 지닌, 인간 공자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부터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공자가 새롭게 보이니 《논어》 또한 새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공자는 더 이상 나를 고문하는 사람이 아닌, 또 한 분의 스승으로서 제 곁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인간 공자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순서상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 공자를 말하기 전에 그가 살았던 그 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공자가 살던 그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해 또 더 먼 옛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논어》만이 아니라 앞으로 다룰 중국의 여러 고전을 다루기 위한 기본적인 역사 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자그마치 5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알아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신화 속의 인물 1 – 삼황 (원시 공동체에서 씨족 사회로)

공자가 살던 시대는 예측 불허의 시대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전쟁이고, 또 자고 일어나면 왕이 바뀌고 나라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농사를 짓다가도 ‘모여라!’하면 바로 창을 들고 모여 전쟁을 치러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시기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역사상 전쟁이 없던 때가 별로 없었지만, 유독 심했던 때가 있었으니, 중국에서는 그 시기를 일러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고 합니다.
이 말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공자가 늘그막에 역사서를 하나 썼는데 그 책 이름이 《춘추|春秋|》입니다. 그래서 공자가 썼던 역사에 나오는 그 시기를 춘추시대라고 불렀습니다. 공자가 죽고, 훗날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또 얼마 안 있어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합니다. 그 때 유향이라는 사람이 춘추시대 이후의 역사를 다룬 《전국책|戰國策|》을 썼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이 이 두 시기를 함께 일러 춘추전국시대라 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논하려면 역사를 조금 더 올라가봐야 합니다. 이왕 올라가는 김에 끝까지 올라가보죠. 어차피 동양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특히 사서삼경이라 불리는 《논어》,《맹자》,《중용》,《대학》,《시경》,《서경》,《주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삼황오제로부터 춘추전국시대까지의 역사만이라도 꼭 알아야 합니다.

우선 전설 속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이야기입니다.
삼황이란 신농씨, 복희씨, 수인씨를 가리키는데, 전설상의 인물들입니다. 사마천은 이들 존재를 의심하여 《사기》에서 아예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화나 전설 속에는 그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원시인류는 불을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훗날 오랜 시행착오 끝에 불을 발견하고, 또 직접 불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불을 발명한 사람이 바로 수인씨|燧人氏|라고 합니다. 또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사람들은 끈으로 그물을 만들고 활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게 됐습니다. 이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 복희씨|伏羲氏|라고 합니다. 또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 신농씨|神農氏|입니다. 신농씨는 재주가 많아 농사뿐만 아니라 의학, 음악, 점술 분야에 두루 뛰어났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삼황의 이야기는 먼 옛날 인류의 진화 과정을 나타내는 전설일 뿐입니다. 고대인들이 더 이전인 태고시대의 상황을 상상한 것입니다. 그냥 재미로 알아두시면 됩니다.
오제 이야기는 삼황에 비해서는 조금 더 후대의 일이니 사실이 많이 반영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전설 속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시조 단군이었다는 식입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박혁거세는 말이 낳은 알에서, 주몽은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가 햇빛을 받아 임신하여 낳은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설마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요?
삼황의 시기는, 역사적으로 보면 원시공동체에서 씨족사회로 넘어가던 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천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논어 연재를 위한 참고 자료


■ 도서 : 진순신 《중국의 역사 1》, 풍국초 《중국상하오천년사 1》, 서연달 外 《중국통사》,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 원가 《중국신화전설 I》, 진현종 《여기 공자가 간다》, 신영복 《강의》, 오성수 《오PD의 논어 오디세이 1084》, 최인호 《유림 2》, 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사서삼경을 읽다》,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상》, 김용옥 《도올논어 1,2,3》, 기세춘 《동양고전 산책 1,2》, 신정근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홍사중 《나의 논어》, 박이문 《논어의 논리》
■ 기타 : 이정우 교수의 철학아카데미 강좌 〈철학사 입문코스 1,2〉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참고 자료는 연재 마지막 회에서 간단하게 리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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