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人行必有我師. –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참으로 뜻 깊은 말입니다.
그러나 《주역》은 말합니다.
三人行, 則損一人, 一人行, 則得其友.一人行, 三則疑也. – 세 사람이 함께 가면 한 사람은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되고, 홀몸으로 길을 가면 반드시 그 벗을 얻게 된다. 한 사람이면 순조로우나 세 사람이면 의심이 생긴다.
제 목 : 反처세론
지은이 : 구원(顧文) / 김태성 옮김
펴낸곳 : 마티 (초판 출간일 2005.10.25) / 초판 1쇄를 읽음 ₩9,800
《反처세론》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목의 뉘앙스부터 묘합니다. 기존의 처세론에 반(反)한다는 의미로 읽히겠지만, 또 찬찬히 뜯어보니 결국은 反’처세론’입니다.일찍이 책 제목이 특이하여 출간 소식은 알고 있었으나 막상 ‘처세’라고 선명하게 붙여놓은 제목의 책을 선뜻 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연말에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가 던져주고 갔습니다. 심심풀이로 화장실에서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색하여 읽을 때보다 마음을 비우고 볼 때 더 큰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그러했습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누군가 주역의 몇 글자 인용해놓구선 주저리주저리 썰~을 풀어놓은 고만고만한 책 정도로 생각했는데, 뜻밖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하겠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중에 나의 스승이 있는 것도 맞고,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말도 맞습니다. 이 두 말은 결코 서로 반대되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측면을 얘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손해가 생긴다는 말도, 두 사람만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 사람이든 네 사람이든, 마치 일대일로 대하듯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주역이니, 이렇게 해석한들 어떻겠습니까^^
이런 말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항괘(恒卦) 상전에 “君子以立不易方 – 군자는 원칙과 방향을 굳건히 세워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흔들림 없는 그 무언가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久非其位,安得禽也 – 적당하지 않은 자리에 오래 있으니, 어찌 새를 잡을 것인가?” 원칙과 방향이 아무리 굳건한들 합당한 위치와 조건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振恒,凶 – 한결같이 지켜오던 것을 뒤흔들면 흉하다”라고 합니다. 원칙과 방향을 한결같이 지키되, 그 자리가 바른 자리인지 늘 깨어있으라는 말인가요?
이쯤 읽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 – 공자가 《주역》을 읽다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너무나 유명한 고사가 있습니다. 천하의 공자께서 왜 《주역》을 보고 또 봤을까? 혹시 너무 알쏭달쏭한 말들이 이해할 수 없어 오기로 끝까지 본 것은 아닐까… (썰렁~)
썰렁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이제 물 건너 미국으로 가보죠^^.
발명왕 에디슨이 처음 뉴욕에 갔을 때 그의 옷차림을 본 친구가 옷을 좀 그럴싸하게 입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에디슨 왈,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뭘 입어도 마찬가지지, 뭘”
나중에 에디슨이 발명왕으로 명성을 날릴 때, 친구가 다시 말했습니다. “이제 너도 유명인사가 됐는데 옷은 한 벌 빼입어야지.”
그러자 에디슨 왈,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뭘 입어도 마찬가지야.”
《주역》에서는 이러한 처세를 백비(白賁)라고 합니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백색의 꾸밈’이라는 건데, 꾸미지 않는 꾸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좀 다른 비유이기는 하지만, 빌게이츠가 신제품 발표장에 청바지를 입고 나와도 그럴싸한데, 만약 우리가 그런 큰 자리에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나간다면…^^
마음을 버리고 책을 읽으니 이런 엉뚱한 상상조차 재미있었습니다.
책에는 서른 한 편의 얘기가 있습니다. 매일 하나씩, 한 달이면 화장실에서 독파할 수 있습니다.
단, 혹시 이 책을 사서 보시려거든, 그 전에 반드시 마음을 비우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귀에 거슬리는 말도 곧잘 등장합니다. 특히 각 장 말미에 《反처세론》이라고 정리해놓은 문구는, 보기에 따라 이 책을 집어던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세 사람이 원탁회의를 할 때는 가능한 한 첫번째 발언은 피하라” – 무슨 이 따위 말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反처세가 아닌 얄팍한 처세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먼저 말하기보다 경청하라’로 해석하면 또 달라집니다.
제가 ‘처세’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 그 말 본래의 뜻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말을 즐겨 쓰는 이들의 가벼움 때문입니다.
‘처세’는 책 속의 한 문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곧 자신의 세계관이자 가치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