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名不虛傳) – 이름이 헛되이 전해지지는 않는다는 이 말은, 안철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는 CEO 안철수의 모습을 매우 진솔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감동은 다름 아닌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정신과 ‘성실’이라는 표현이 누구보다도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자기 노력의 모습입니다. 성공 스토리를 치장하기 위한 화려한 수사(修辭)도 없고 모사(謀士)의 얄팍한 술수도 보이지 않습니다.
공맹(孔孟)이 동양의 덕치사상(德治思想)의 효시라면 안철수(安哲秀)는 한국의 덕치경영(德治經營)의 효시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비유일까요…
빌 게이츠는 경영자들 사이에서도 백 년에 한 명 날까 말까 한 비즈니스의 천재이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벤처기업의 모델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합니다.
그러는 안철수 역시, 제가 보기에는 백 년에 한 명 날까 말까 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성실/윤리/도덕/전문 경영의 모범이라 할 수 있으니 덕치경영의 효시라고 한들 크게 잘못된 건 없어 보입니다.
안철수는 책의 전체를 통해 개인의, 나아가 기업의’가치’와 ‘가치관’, ‘핵심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를 세우고 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의 일을 회상하며)
당시 어려운 자금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있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회사를 끌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좋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2년을 보장받았던 셈이다.(p.30) - (미국 유학생활 직후 과로로 병원에 몇달간 입원해 있던 때의 일을 회상하며)
나는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쾌락을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더 의미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p.41)이 부분을 읽노라면 마치 성자(聖者) 안철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
- 포라스는 ‘영속하는 성공기업’들은 공통적으로 핵심가치에 근거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나 나름대로 ‘영혼이 있는 기업 만들기’라고 정의하였다.
(…)나는 핵심가치를 찾는(‘정하는’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목적을 ‘영속하는 성공기업 만들기’에서 ‘영혼이 있는 기업 만들기’로 바꾸었다.
(…)
핵심가치는 기업 구성원의 공통된 가치관이자 신념이며 존재이유이다.(…)
영혼이 있는 기업을 위한 핵심가치는 다음가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잘 유지될 수 있다.
1.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
2. 일관성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3. 제도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p.89~92) - 새 사람이 들어왔을 때 그들과 1,2년을 같이 있을 게 아니라 적어도 10년은 함께 할 것이라는 동료의 자세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 회사의 경우 사람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가치관 중심의 면접을 하기 때문에 채용 후에는 미세조정으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p.125)
그 외에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옮겨봅니다.
- (1999년 CIH 바이러스 대란의 일을 기술하며) 바이러스 대란이 기회가 된 데에는 위의 요소 외에도 직원들의 헌신이 큰 역할을 하였다. 전 직원들은 더이상 말할 기력이 없을 정도로 많은 전화 문의를 받아야 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p.57)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라 옮겨 적어봤습니다. 제가 바라는 회사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 바이러스 대란과 관련하여 혹자는 이것을 행운이라고 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굳이 표현한다면 우리에게 ‘준비된 기회’였다.(p.57)
-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을 하면 우리가 좀더 잘 되겠지’라는 판단기준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마인드로 제품을 기획하고 새로운 시장에 접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 모든 결정에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다’라는 기준을 적용하였다.(p.62)
이후에도 이 ‘생존’이라는 판단 기준은 곳곳에서 적용되고 있습니다. ‘생존’ – 이 무시무시한 말을 선택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을 때 그 결과물이 어떠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크게 본받을 만한 대목입니다.
- 혹자는 내가 사업하는 사람이 아니고 마치 대학교수처럼 자기 이론을 만들어 실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델은 오랜 고민 끝에 만들어진 것이며, 늘 그러했듯이 회사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지 느긋한 이론 실험이 아니다.(p.80)
- 핵심가치 찾기가 반드시 빠르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사장이 직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부서장에게 대폭적인 권한 위임을 할 필요가 생길 때, 회사의 성장에 따라 조직이 일관성있게 움직일 수 있는 철학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가 적기이다.(p.95)
- 개인적으로 나는 노동자라는 말이 편안하지 않다. 물론 이 단어에 담겨진 역사적·사회적인 의미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에서는 상하간의 계층구분, 분리의식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고정관념이 생겨난 데에는 많이 가진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p.115)
안철수의 말이기 때문에 저는 이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 부서회식 명목이 아니면 우리는 각자가 알아서 계산한다. 물론 나에게 지급된 법인카드가 있지만, 그걸 기분 내키는 대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짜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는 게, 이렇게 아낀 돈을 나중에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CEO는 회사 돈과 내돈에 대한 구별이 강박증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123) - 고객에게 정직해지는 법은 간단하다. 그것은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는 판매를 위해 자신 없는 약속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즉 고객과의 관계에서 ‘일단’은 결코 남발해서는 안 되는 표현인 것이다.(p.128)
- (내부 고객만족에 대해 얘기하며) CEO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를 둘러싼 만족의 소리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불만족의 침묵’이다. 이것은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예민함이 요구되는 부분이다.(p.129)
- 사원이 개인면담을 청해올 때는 굉장한 심각성이 전제되기 때문에 만사를 제쳐두고 만나야 한다. 실제로 예상치도 않은 면담 요청 때문에 외부 모임에 나가지 못한 날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p.129)
- (이 말 역시 안철수가 한 말이니까 옮깁니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굳이 옮길 필요도 없는 가식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나는 직원들을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회사 사람들도 아직은 나를 권위로 막힌 울타리 너머에서 바라보지 않는다.(p.136)
- CEO가 자기 능력의 한계를 솔직히, 정확하게 인정하는 것, 이것은 이제 하나의 전략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어가고 있다.(p.160)
- (〈월급받는 날은 기분이 참 좋다〉는 얘길 하면서) 나는 철저하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고 어떤 대가를 받으면 죄책감이 든다. 이것은 타고난 성격이니 어쩔 수가 없다. 나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공휴일을 맞을 때나 월급을 받을 때 한없이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다행히 이러한 자괴감에 빠진 적이 없다.(…)
월급은 나의 생계 유지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내가 가진 주식은 그 자산 가치를 재산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계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p.165) - 앤드류 그로브의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란 책을 읽고 굉장히 놀란 적이 있다.(…) 세계적인 기업의 CEO도 걱정을 안고 사는데, 소소한 바람에도 전복될 정도의 우리 회사에서는 고민을 더하면 더했지 덜하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회사는 CEO의 고민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p.174) - ‘벤처기업은 빚을 쓰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벤처기업은 원래 리스크가 많은데, 투자 형식이 아니라 빚을 끌어다 쓸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그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높기 때문이다.(p.192)
- (사람이 모자라다는 불평에 대해 얘기하면서) 10개의 업무가 있다면 그 중에서 실제 회사 매출에 큰 공헌을 하거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2~3가지를 정한다. 이 일만 제대로 해도 회사는 돌아가게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경우에 따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이처럼 정확히 제로베이스에서 회사 생존에 꼭 필요한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해야지, 일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자꾸 두게 되면 가외의 일은 더 생겨나게 마련이고 그러면 회사는 비효율적인 상태가 된다.(p.207)
이 이후의 내용은 너무나, 너무나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얘기들로만 되어 있습니다. 지루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인 말을 너무나도 강조하는 안철수의 모습에 감동마저 느껴집니다. 제가 옮겨놓지 않은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 내용들이 이 책의 핵심일 것입니다.
‘이해하는 마음’ ‘남에게 피해 안 주기’ ‘다양성 인정하기’ ‘상대방의 말 경청하기’ ‘사심없이 대하기’ ‘평생공부’ ‘꾸준히 발전하기’ ‘최선을 다하기’ ‘교과서대로 하기’ ‘방심을 경계함’ ‘새로움에 대한 적응’ ‘몰입’ ‘장기적으로 생각하기’ ‘원칙중심의 판단과 선택’ 등이 그것입니다.
위에서 나열한 모든 말들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은 이렇습니다.
“사장은 고독한 존재라고 하는데 나는 회사를 세운 후 특별히 고독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직원들과 동료의식을 느끼기 때문인데 이렇게 된 데에는 그들과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 큰 힘이 되었다”(p.156)
저도 짧으나마 사장을 해보았는데, 그때나, 지나고 나서나 늘 주위에서 들었던 얘기는 ‘사장은 고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철수는 저의 이러한 생각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저는 절대 ‘고독한 사장’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