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경제학

저는 책 읽기를 취미로 하지만, 그 전에 현실을 살아가는 직업인입니다. 한정된 시간을 쪼개어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갈등을 많이 합니다.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아무 거나 읽고 싶지만, 그래서는 별로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다소 재미는 줄어들어도 관심 분야를 정해 다소 깊게 읽어보려 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의 주제는 서양 고전입니다.

몇 권 안 되는 서양고전 참조 도서를 읽기에도 빠듯한 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경제경영서를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은, 직업인인기 때문입니다. 인문학도 넓은 의미에서는 사업에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사업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얻기에는, 그래도 경제경영서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재작년에 《블루오션 전략》을 읽고 적지 않은 감동을 받은 것도 제가 사업 기획과 마케팅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직업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블루오션 전략》은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행동경제학》을 읽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블루오션 전략》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꽤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은 ‘가치혁신(Value Inovation)인데,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바로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입니다. 《행동경제학》은 그러한 고객의 심리를 파헤친 책입니다.


   제   목 : 행동 경제학
   지은이 : 도모노 노리오 / 이명희 옮김
   펴낸곳 : 지형 (초판 출간일 2007.1.2 / 2007.1.19 초판 5쇄를 읽음) ₩18,000


그러나 심리학 책은 아닙니다.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이론에 인지심리학의 성과를 도입하여 개량한 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입니다.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적 인간’, 즉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의 배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기적인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은 신(神)에 가깝습니다. 행동경제학은 합리적 신(?)이 아닌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 왜 그렇게 하는가, 행동의 결과로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주류경제학의 역사는 오래된 반면 행동경제학은 용어조차 생소합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널리 알려져 두루 통하는 ‘공리’가 없습니다. 대부분 주류경제학의 ‘상식’을 뒤집는 이론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경제적’ 인간을 모델로 하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펴본 결과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실험백서입니다. 역사와 전통에 따른 이론적 기반이 다소 취약하기 때문에, 흔히 경제학 책에 많이 보이는 수식 따위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실험과 통계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중에는 널리 알려진 법칙에 관한 것도 있지만 대개는 생소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충분히(!) 이해가능한 것들입니다. 아니, 이해가능하다는 말보다는 공감이라는 표현이 낫겠습니다. 합리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지만 감정적으로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책의 수를 추정해 보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45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추정 평균치는 51권이었습니다. 실제로 애거서 크리스티는 67권이 책을 썼습니다. 이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원래’ 예상한 권수를 말해보라고 다시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평균치가 63권으로 높아졌습니다. 결과를 알고 난 뒤에는 자신이 정답에 더 가까운 예측을 했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실험을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아보이는 물건을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는데 나중에 보니 조잡한 물건이었을 때 ‘싼 게 비지떡이지’라고 합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생각하여 산 것이 아닌데 결과를 보고 자신이 원래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이런 실험을 했더라면 ‘싼 게 비지떡 효과’라고 명명했을지 모르겠지만, 책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사후판단 편향(Hindsight bias)’라고 명명합니다.

이러한 편향(bias)는 휴리스틱에 의해 발생합니다. 휴리스틱(heuristic)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불확실한 사항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명확한 실마리가 없을 때 사용하는 편의적·발견적인 방법입니다. 말이 어렵지만, 일종의 ‘선입견’ ‘고정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뜻에 보다 근접하게 표현하자면 ‘쉬운 방법’, ‘간편법’, ‘어림셈’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경험’에 의해 판단합니다. 수많은 경험 중에 장기기억 상태로 저장되어 있는 것, 그 기억으로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사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이라고 합니다. 위에서 말한 ‘사후판단 편향’도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에 의해 발생한 편향입니다.

책에는 이러한 예가 무수히 많이 나옵니다. 괄호 안의 수는 페이지 번호입니다.
폰티홀 딜레마(49), 최종제안게임(58), 죄수의 딜레마(62), 대표성 함정(75), 도박사의 오류(77), 평균으로의 회귀(78), 기저율을 무시한 믿음(80), 기준점 효과와 조정(81), 앙각 휴리스틱(88), 이중 프로세스 이론(90), 린다 문제(94), 로봇 프레임 문제(97), 프로스펙트 이론(105), 확실성 효과(122), 엘즈버그 패러독스(128), 보유효과와 현상유지 바이어스(135), 프레이밍 효과(159), 초깃값 효과(165), 심적회계(173), 중간대안(183), 스토리가 있으면 선택된다(186), 이자율과 할인율(194), peak end 효과(221), 공공재 게임(236) 등

경영과 마케팅에 연관된 직무를 가진 분들께는 꽤 유용한 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응용하기는 그리 쉬워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제 고민이 짧아 그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블루오션 전략》에 비해 파괴력이 다소 약해보입니다. 물론 《블루오션 전략》은 전략경영서이고 《행동경제학》은 말 그대로 경제학 서적이니 단순 비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저와 처한 입장이 다른 분들에게는 정 반대의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각설하고, 요컨데, 이 책의 결론!

“마음에는 이성이 모르는 이유가 있다.”(파스칼 《팡세》)
그 이유가 궁금해 파헤치는 퓨전 경제학, 이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입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몇 가지 실험에서 경제학 전공자들이 훨씬 이기적인 판단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공공재 게임에서 평균 기부율을 조사했더니 경제학 전공자는 20%, 기타 전공자는 49%로 나타났습니다.
‘경제적’ 인간이 결코 ‘인간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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