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나는 철학을 왜 공부할까’
지혜에 대한 사랑? 이건 너무 거창하다. 그럼… 그냥 알고 싶어서?
무언가 이유가 있긴 한데, 분명한 것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구 말마따나 철학은 일종의 ‘사치’인가 봅니다.

‘왜?’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하지 못한다면, 질문을 바꿔, 철학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역시나 사치스러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면서 이러저러한 근본적인 물음, 즉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번씩은 가져봄직한 사치스런 물음을 하게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경험과 지식으로 답을 합니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아니면 그저 순식간에 스쳐지나버려 기억하기 힘든 순간이든 간에. 아마 그런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이 바로 철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철학은 사치이긴하지만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사치스런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책을 읽다보면 도저히 ‘철학’ 없이 독서를 지속하기 힘든 상황에 맞딱뜨리게 됩니다.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필요 없는 수많은 철학적 개념들, 생전 들어보지 못한 철학자의 이름들…
예를 들어, 실존, 패러다임, 무의식, 초자아, 트라우마, 담화, 아우라, 니체, 베르그송, 후설,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가타리, 실존주의, 현상학, 프래그머티즘,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에구구… (참고로 여기서 에구구는 감탄사입니다^^)

다른 모든 이유와 상관 없이 그저 책을 제대로 읽고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별 생각없이 재미있게 본 영화에 대한 평론 기사 속에도 알듯 모를듯한 철학적 개념이 있습니다. 철학적 개념은 이제 특수 지식 영역에서 상식의 영역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을 현학적이다, 사치다,라고 규정해버리면 할 말이 없지만, 저는, 철학은 이 시대를 ‘교양있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사치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양있게 사는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합니다. ‘꼭 알아야 할 것’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1) 필요한 것을 두루두루 설명해 놓은 사전, 2) 어려운 얘기를 쉽게 풀어 쓴 개념 입문서입니다.


   제   목 :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지은이 : 발리스 듀스(VALIS DEUX, 집필그룹)
   펴낸곳 : 개마고원(초판 출간일 2002.2.25)/ 2003.8.25刊 초판5쇄를 읽음 / 값 9,500원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은 1)의 모양을 띤 2)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니체의 ‘원한으로부터의 탈출’ ‘영원회귀’, 베르그송의 ‘이마주’와 ‘엘랑 비탈’, 소쉬르의 ‘시니피앙/시니피에’, 들뢰즈·가타리의 ‘리좀’ 등 쉰여명의 철학자의 80여 개의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고판 크기에 300여 쪽 분량입니다. 지하철 타고 오며가며 읽기 편한 사이즈입니다. 모든 개념마다 그림이 있어 이해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쉽게 설명했다해도, 역시나(!) 철학책입니다. 짧은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때로는 많은 상상을 해야 합니다. 80여 개의 모든 개념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이자, 장점입니다. 모든 개념을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자면 아마 책의 분량이 수십 수백배 정도 되어야했을 것입니다. 비교적 빠르게 현대 철학의 흐름과 주요 개념을 조망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자 최대의 장점입니다.

꽤나 공들인 책입니다. 여러 개념과 학파를 무성의하게 묶어놓지도, 아무렇게나 배열해놓지도 않았습니다. 보통의 철학사전처럼 하나하나의 개념 자체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흐름’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생각되지 않았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새로운 개념으로 탄생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 흐름을 크게 철학의 과학화, 과학의 철학화, 반(反)과학이라는 세 가지 틀에 넣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80여 개나 되는 이 많은 개념들을 이처럼 쉽게 설명한 책도 드물 것입니다. 이와 비교되는 책 중에 《생각의 역사》라는 게 있습니다. ‘한 권으로 읽는 서양철학 명저 100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요, 말 그대로 100권의 주요 철학 서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700 쪽이 넘는 분량에, 책 위주의 소개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한번 훑는 것조차 만만치 않습니다. 끝까지 읽는다한들 그 책이 다루고 있는 기본적인 개념을 모른 상태에서 그 설명이 온전하게 머릿속에 남을 리 만무합니다. 책 소개보다 중요한 것은 그 철학자가 하고자 했던 말, 바로 그 ‘개념’입니다. 그 개념을 나의 사고로 재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하기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의 역사》는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을 소개하면서 철학의 흐름과 개념을 설명하려 합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이 현대 철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보다 실용적이라는 것입니다.

참,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분량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에 쫓기어 읽다보면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 두 페이지 분량의 개념이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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