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한강을 건너 출근한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계절은 한 번 바뀌었을 뿐인데, 아침마다 한강의 풍경은 새롭습니다. 이 느낌을 언젠가는 글로 옮겨야겠다고 읽던 책 뒤에 ‘매일 한강을 건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라고 써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묵혀 두고 표현하지 못한 것은, 제 언어의 한계라기보다는 덜 숙성된 느낌을 옮길 재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어’ 이전에 ‘삶’이 우선인 것은, 삶이 무르익지 못하고선 언어가 무기력하기 때문입니다.
김훈의 책을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 일은 이편에서 저편으로, 익숙함에서 새로움으로, 밀실에서 광장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가는 문명사적 사건이다. 아침마다 한강을 건너서 출근하는 일이 축복임을 겨우 알았다.(p.156)”
아침마다 한강을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이겠지만, 강을 건너는 일이 ‘문명사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김훈밖에 없는 듯합니다.
제 목 : 김훈 世說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이 책은《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개정판임.
지은이 : 김훈
펴낸곳 : 생각의 나무 (초판 출간일 2002.3.8 | 2004.3.10일판 개정 신판을 읽음) ₩9,500
이 책은 김훈이 ‘한미한 초야에서 때때로 생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썼던 토막글’입니다. 다시 말해, 김훈 산문의 원류(原流)라 할 수 있는 시사 칼럼의 모음입니다. 책머리 글을 읽어보면,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그의 글을 출판사에서 묶어 저자의 동의를 얻어 출간한 것 같습니다.여하튼, 과거 신문지상에서 김훈의 글을 눈여겨 보지 못한 저로서는, 그가 본업(?)에 있을 때 썼던 글들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신문지 위의 글도, 사람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그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글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지만 그의 글이 어떠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또한 만만찮습니다.
“그의 문장은 단호하면서도 은유적이고, 시적이면서도 논리적이고, 비약적이면서도 검박하다.”
결국 이보다 더 김훈의 문장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책 표지에 있는 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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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글 쓰는 이는 컴퓨터에 자판을 두들기는 사람보다 기본적으로 한 수 위입니다. 연필로 글을 쓸 땐, 생각하고 글을 써야하지만, 컴퓨터로 쓸 땐 글이 생각보다 앞서 갑니다. 지우고 다시 쓰기가 연필로 쓰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지운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훈의 글의 힘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생각하다가, 아직까지 연필로 글을 쓴다는 그의 글쓰기 습관도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