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에 책을 읽었으나, 책을 다른 이의 집에 두고 와서 순전히 느낌만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본래 책을 읽을 때 줄을 긋고, 접고, 메모해둔 것을 보면서 글을 쓰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상당히 어색합니다. 그러나 다행히 소설이니 그 느낌만 전하더라도 충분할 듯하네요.
《칼의 노래》에 감동하여 《현의 노래》를 읽었습니다. 김훈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짧은 문장, 절제된 표현, 등장 인물이 내뱉는 몇 마디 안되는 문장들. 소설이라는 것이 모두 이러하다면 소설이라는 장르에 깊이 빠질만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목 : 현의 노래
지은이 : 김훈
펴낸곳 : 생각의 나무(초판 출간일 2004.2월 / 2004.4월 1판 5쇄 읽음)
이야기는 왕의 죽음으로 어이없이 땅에 묻히는, 순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왕이 죽으면, 그를 시중들던 수십명의 남녀와 고을 백성이 산 채로 묻히고, 혹 훌쩍거리거나 놀라 비명이라도 지를라치면 몸을 조각내어 묻어버렸던 그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가야의 운명과 가야 백성의 운명이, 이 비극적 묘사 속에 나타나있는 듯합니다. 야만과 아수라를 ‘장엄’하게 만드는 의식, 그 의식의 한 순간을 우륵은 음악으로 장식합니다. 그 음악 한 쪼가리가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에게 과연 무슨 위로가 될 것인가. 그 때문인지 소리는 ‘본래 살아 있는 동안만의 소리이고,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라는 우륵의 자조적인 되뇌임이 자주 등장합니다. 결국 왕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던 악사 우륵은, 왕의 나라에 묻히기를 거부하고, ‘살아서 소리내기 위해’ 조국을 버리고 적국 신라에 귀의합니다.이사부가 묻습니다.
“그래, 네가 나에게서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나를 그저 내버려두시오. 신라가 가야를 멸하더라도, 신라의 땅에서 가야의 금을 뜯을 수 있게 해주시오. 주인 있는 나라에서 주인 없는 소리를 펴게 해주시오.”
주인공은 우륵이지만, 우륵의 얘기가 전부는 아닙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큰 축은 가야 최고의 대장장이 ‘야로’가 맡고 있습니다.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에 철은 최신의 문명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소설 속의 철은 인간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철이 아니라, ‘칼’과 ‘병장기’를 의미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철입니다. ‘철은 왕의 것이다’라고 야로는 말합니다. 그러나 왕을 위한 철을 따로 준비해둔 것일 뿐, 적국인 신라를 위한 철도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철은 철의 흐름이 따로 있다’는 것은, 결국 권력의 흐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는 권력의 흐름에 그 몸을 의지하다가 결국 신라 장군 이사부에 의해 단칼에 베여, 전장의 수많은 병사들이 땅에 묻힐 때 함께 묻힙니다. 이 장면, 정말 덧없습니다.
이 책의 등장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륵과 그의 아내 비화, 우륵의 제자이자 몸종인 니문,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 신라의 병부령 이사부, 그리고 가야의 왕을 시중들던 여러 신하와 시녀들, 특히 그 중에서 임금과 함께 묻히기를 거부하고 달아났던 아라, 등입니다.
임금의 시녀였던 아라는 후에 야로에게 발견되어 야로와 몸을 섞습니다. 야로는 아라를 신라로 보냅니다. 아라는 다시 도망을 갔고, 우륵의 눈에 띄고, 우륵은 젊은 제자 니문과 연을 맺게 해줍니다. 그러나 결국 신라 제사장에게 발견되어 왕과 함께 순장되고 맙니다.
아라를 통해 본 세상은 덧없음 그 자체입니다. 윤리도 사랑도 없습니다. 충이라고는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이는 소설 속의 등장 인물 누구를 통해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신라 장군 이사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전쟁을 하지만, 가끔 들리는 서라벌의 풍경은 낯설기만 할뿐입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륵이 만든 가야의 금은 울림통이 있습니다. 그 통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그 나무는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단단하게 말린 것입니다. 울림통은 물기가 없고 단단한 나무로 만든 비어있는 통입니다. 그 빈 공간에 소리가 울립니다. 그 소리가 진짜 소리입니다. 통이 왜 비어있어야 하는지, 소설을 덮고 보니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