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제   목 : 연금술사
원   제 : Alchemist
지은이 : 파울로 코엘료
출판사 : 문학동네 (초판 출간일 2001.12)


고민이 됩니다.
도대체 서평을 어떻게 써야하는 걸까?
“전세계 53개국 2700만 독자가 격찬하는 전설적인 베스트셀러”라는데,
내가 27,000,001번째의 격찬하는 독자인가?

온갖 매체와 온라인 서점의 독자들도 덩달에 격찬하고 있습니다. 선배 또한 나에게 진실로 권하던 책이구요. 그런데 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지…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이 혼란함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있을거야’하면서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면서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포기를 하고 – 책 몇 장을 뒤진다고 해서 없던 감정이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 조용히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제 서평을 쓰려했지만 이제서야 – 하룻밤을 푹~ 자고 난 아침에서야 – 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의 이야기입니다.
‘초심자의 행운’을 넘어, 신(또는 세상이) 암시하는 ‘표지’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지극히 단순한 것이 실은 가장 비범한 것임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비록 그 결과는 ‘참담’했지만, 그래서 그의 깨달음은 ‘충만’했습니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을 몸소 깨닫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제가 이 책에서 주인공의 “충만”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그건 이 책이 지나치게 – 어디까지나 제 입장에서 – ‘상징’의 언어로 씌어있다는 것입니다.
“상징의 언어란 만물의 정기, 또는 칼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이해했다. (p.272)”는 저자의 고백처럼, 파울로 코엘료는 ‘진정한 깨달음’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방법으로 ‘상징의 언어’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저의 ‘현재의’ 정서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책은 아마도 제가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삶의 기로에 서서 무언가 ‘근본적인’ 선택이 필요할 때, 그럴 때 접했더라면 상당히 감동적으로 다가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다소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신나게’ 살고 있습니다.
일과 가정,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의 방식과 목표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평을 쓰다 말고 상상을 해봅니다.
제가 만약 저의 마음을 우화 형식으로 쓰면 어떻게 될까?

어느 산골에 눈 작은 북치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작정 산골이 싫어 서울로 올라옵니다. 거기서 그의 성격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아마도 과거에 그를 보았던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입니다.
그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방을 붙입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실 선배를 찾습니다’.
하나 둘 선배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런 선배들과 후회없는 나날들을 보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북치기 소년은 드디어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대학 때 세운 가치관과 세계관, 인생관은 세로운 세상에서 그리 유익하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북을 살 돈을 버는 건 요원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뿐인 나 자신을 남들과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약간의 시련이 있었지만, 시련의 그 순간에도 ‘이건 시련 축에도 끼지 않아’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께서 내린 가장 큰 축복일 것입니다.
(후략)

그리고 〈작가의 말〉을 통해 저는 이런 얘기를 할 것입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라고. 덧붙여 “미래에 대한 ‘표지’는 바로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말입니다.

하하, 제가 저를 북치기 소년이라고 한 것은, 대학에 입학해서 호기심에 낙원상가에서 작은 북(드럼)을 하나 사서 (최근 갑자기 고인이 된) 선배한테 가르쳐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나서입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과 룸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실 선배를 찾습니다’라는 공고(?)를 붙여 놓은 것도 사실이구요^^.

하하하~ 하하하하!

파울로 코엘료’류’의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에 감춰진 – 보일듯 말듯 알듯 말듯한 보물들을 찾아내는 상상, 그런 과정에서의 깨달음.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아있지만, 여기서 그냥 마치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네요.
스테판 M. 폴란의《2막》의 표지에 자꾸만 시선이 갑니다.

*
참,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지’라는 말이 제대로 번역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넌지시 알리는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국어 사전의 ‘표지’라는 말과는 다소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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