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

책이 얇다고 빨리 읽히는 건 아니다. 지난 주 바쁘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하철에서 책 한 권 읽기가 그렇게 힘든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책 읽는 것도 나름대로 리듬이 있는 것 같다.

‘똘레랑스’는 ‘파리의 택시’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홍세화의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똘레랑스 개념을 무척이나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러나 똘레랑스라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언어에 대해 언어로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다만 똘레랑스라는 말의 역사적·사회적 의미에 대해 조금 이해했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은 이러하다. “똘레랑스라는 개념은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때 생명을 얻는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개념은 그저 관념일 뿐이다.(p.142) ”


   제   목 :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
   시리즈 : 책세상 문고 – 우리시대 072
   지은이 : 하승우
   펴낸곳 : 책세상 (초판 출간일 2003.6.20 | 초판 1쇄를 읽음) ₩4,900


똘레랑스의 어원은 ‘견디다’ ‘참다’를 뜻하는 라틴어 ‘tolerare’에서 나왔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1572년 8월 24일 기독교 구교(가톨릭)와 신교(위그노)의 갈등에서 빚어진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이 똘레랑스를 출현하게 한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한다. 파리에서만 3,000여명의 신교도가 구교도에 의해 희생되었고, 이후 악순환이 계속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지식인들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모아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일 것을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똘레랑스라는 것이다.
똘레랑스를 우리말로 옮기기에 딱 맞은 표현을 찾기 힘들다. 영어의 탈러런스와도 다르다고 한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적극적인 관용’이라고 함이 적당할 것 같다. 똘레랑스의 반대어는 앵똘레랑스이다. 그러나 똘레랑스에는 극단주의를 부정하는 ‘앵똘레랑스’도 포함한다. 따라서 차이를 ‘긍정하는’ 논리이면서 극단을 ‘부정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비교적 간단하게 똘레랑스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정의했지만, 이 책에서는 똘레랑스의 등장과 형성 과정, 똘레랑스의 기본 원리와 한계 등에 대해 매우 폭넓게 설명·논증하고 있다. 그 과정은 다소 지리하고 재미없다.(아마 책 내용이 그러했다기보다는 나의 몸이 고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의 표현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

“진보는 불편하고 귀찮은 것이다. 똘레랑스는 앵똘레랑스와 맞서는 부담을 감수해야하고 듣기 싫은 목소리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중은 그런 진보적인 삶이 불편하고 귀찮아 피하려 하고 지식인은 그것이 옳다고 강요하려 하니 둘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p.141)”

맞다. 진보는 불편하고 귀찮은 것임에 틀림없다. 옳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우 불편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틈을 어떻게 밀착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웃음”이 약이라고 한다.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면 대중은 똘레랑스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참 쉽지 않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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