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라고 시작합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이름에 ‘창녀’의 역할을 부여합니다. 이 책, 참 심상치 않음을 느낍니다.
제 목 : 11분
원 제 : ONZE MINUTOS by Paulo Coelho
지은이 : 파울로 코엘료
펴낸곳 : 문학동네 (초판 출간일 2004.5.11 / 2004.7.7일刊 초판 4쇄를 읽음) ₩9,500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혹여 옆에서 누가 볼까봐 낯이 붉을 정도의 19세 이하 열람 금지에 해당하는 묘사가 자주 있습니다. 이 글은 性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性은 聖을 향하고 있습니다.
책의 중반쯤에 등장하는 랄프 하르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난 매춘의 역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소. (…) 또하나의 역사는 정반대요. 성스러운 매춘이죠. (…)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바빌론에 관해 이렇게 썼소. ‘그곳에는 아주 이상한 관습이 있다. 수메르에서 태어난 모든 여성은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의 신전으로 가서 환대의 표시로 상징적인 돈만 받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몸을 바친다.'”
그의 말 대로라면 매춘에는 俗과 聖의 매춘이 있는 셈입니다.
브라질 작은 시골 마을 출신 마리아가 스위스로 건너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성을 팔고 있을 때, 랄프 하르트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반전됩니다. 랄프 하르트와의 육체적인 관계가 그것이 聖인지 俗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俗이지 않는 性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소설이 상징하는 俗은 너무나 가차없는 고통을 수반하는 쾌락이기에, 너무나 당연해야할 사랑이 수반된 性은 마치 聖스럽기까지 합니다. (마리아가 자신을 깨닫게 만들어 준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위에서 말한 랄프 하르트이고, 또 한 사람은 테렌스라는 인물입니다. 테렌스 역시 마리아로 하여금 특별한 성적 경험을 안겨주는데, 그것은 랄프 하르트와는 다른 고통과 수치스러움의 끝에서 경험하는 마조히즘과 사디즘적인 쾌락이었습니다.)
비록 주위가 어수선하여 정신이 없던 때 읽었지만, 막힘이 없이 읽었습니다. 오히려 차분히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패스트푸드점에 홀로 가서 이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빤한 주제, 그러나 다루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이 주제를 어떻게 전개해나갈지 궁금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역시 너무나 진부하게, 마이라와 랄프 하르트의 재회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결론은 제가 바라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진부한 결론을 말입니다.
소설은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라야 깊이 와닿는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이 그리 어지럽지 않았더라면, 이 책 역시, 제가 ‘연금술사’를 읽었을 때처럼 시큰둥했을지도 모릅니다. ‘연금술사’를 보고나서 시큰둥한 사람은, 제 주위에 아마 저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참, 11분이 뭐냐구요? 다들 아시겠지만,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 다음 두 문장을 보고 판단하시기를…
“행동으로 넘어가야 할 시간이 오면, 11분, 그것으로 끝이다.”(p.180)
“나는 그와 합류했다. 그것은 11분이 아니라 영원이었다.”(p.337)
***
소설이지만 밑줄을 그었던 몇 곳
사랑은 상대의 존재보다는 부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p.22)
롤러코스터, 그게 내 삶이다.(…) 그 롤러코스터의 궤도가 내 운명이라는 확신, 신이 그 롤러코스터를 운전하고 있다는 확신만 가진다면, 악몽은 흥분으로 변할 것이다. 롤러코스터는 그냥 그것 자체, 종착지가 있는 안전하고 믿을 만한 놀이로 변할 것이다. (p.70)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질문해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p.82)
그녀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 그가 거기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관계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p.172)
“고통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p.260)
“아픔은 쉽사리 중독되는 강력한 마약이는 그것에 습관을 들이지 말라고. (…) 아픔은 본모습을 드러낼 때는 무섭지만, 희생과 체념으로, 또는 비겁함으로 치장을 하면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이도. 인간은 아픔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그것과 함께하는 방법, 그것과 불장난하는 방법, 그것이 삶의 일부분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늘 찾아낸다오.”(p.261)
“우리는 ‘봄이 좀더 일찍 찾아온다면 더 오래 봄을 즐길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할 순 없어요. 단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오. ‘어서 와서 날 희망으로 축복해주기를, 그리고 머물 수 있는 만큼 머물러주기를.'” (p.340)